[월요칼럼] 대통령의 기획탈당과 한국 정치의 퇴보
[월요칼럼] 대통령의 기획탈당과 한국 정치의 퇴보
  • 김학원 의원 【 한나라당 전국위원회 의장 】
  • 승인 2007.02.25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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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2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조만간 탈당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에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잃고 소속 정당을 떠나는 헌정사의 불행한 전통이 또 다시 재현되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임기 중 두 번이나 탈당을 기록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정당정치의 기본조차 부정하는 일로서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가 바닥권에 이른 상태에서 정권창출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소속 정당의 압력에 떠밀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탈당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탈당배경은 과거 대통령들과 비슷하지만 아직도 1년의 임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스스로 선택해 탈당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노림수를 지닌 기획탈당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과거 3명의 대통령은 탈당 전후 정치적으로 중립을 견지하며 초당적 국정운영을 위한 고민과 행동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의 탈당과 내각 중립성은 별개의 문제라며 총리만 당으로 돌려보내고 정치인 장관들은 당적만 버리고 유임시키고, 어떤 정치인 장관은 당적도 그대로 둔 채 유임시키겠다고 한다. 그리고 야당 대표의 정치중립 요구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며 단호하게 거부하며 “대통령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없다”며 탈당 이후에도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탈당은 국정실패의 책임을 통감하고 초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한 진정성이 담긴 탈당이 아니라 다시 한번 정국을 반전시키려는 새로운 정치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의 탈당으로 빚어진 부작용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적하며 열린우리당의 거듭되는 탈당요구를 거부하면서 “퇴임 후에도 평당원으로서 당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다”며 탈당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4년 연임 개헌을 받아준다면 탈당을 할 수도 있다고 모닥불을 지피더니 이제는 “당을 떠나 열린우리당과 탈당파들의 통합신당의 길을 열어주겠다”며 대놓고 얘기하고 있다. 얼마 전 “결국은 모두 함께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을 집단탈당한 의원들의 기획탈당과 다른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오는 12월 대선에서 어떻게든 국민들의 눈을 속이려는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이, 민주국가의 기본인 정당정치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공동으로 국정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책임정치를 근본으로 한다. 국민의 지지가 낮다고 해서, 통합신당의 창당에 장애가 된다고 해서 대통령이 탈당을 하고 여당이 존재하지 않는 촌극이 발생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본질을 훼손하고 책임정치를 회피하는 정치퇴행에 해당한다. 지지도가 낮으면 철저한 자기반성과 함께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생산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탈당을 통해 내용물은 그대로인 채 겉포장만 그럴싸하게 분칠하고 있는 대통령의 행태가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이 정치용, 선거용이라면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은 가속화되고 국정운영은 더욱 어려워진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금은 대통령이 탈당을 선언할 때가 아니라 중립 내각을 구성하여 민생회복에 전념할 때이다. 대통령은 여권의 선거기획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공복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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