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대운하 신드롬(syndrome)과 발작
[충일논단] 대운하 신드롬(syndrome)과 발작
  • 이범영 부국장 당진 주재
  • 승인 2013.07.1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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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핵심공약으로 추진한 4대강사업을 놓고 다음정권을 받은 박근혜 정부의 평가가 매우 냉혹하다.
이같은 치적은 역대 대통령들이 해온 역점사업을 둘러싸고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충격이 만만치 않다.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이름 붙여진 이같은 대 역사(役事)들은 그 재원의 규모에 걸맞게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두가 반대했다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크게 국토를 훼손하고도 ‘뛰어난’ 치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렇듯 대자연을 광범위하게 파괴하면서 추진된 ‘4대강사업’은 매우 불행한 한국의 현주소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불행한 치적을 만들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홍수를 막고 조절하면서 생태계를 보존하는 동시에 수변공간을 통해 살기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기획됐다는 4대강 사업은 그러나 역사와 국민들에게 숨기기 위해 가려진 위장술을 동원한 것이 드러나고 있어 충격적이다.
이른바 대운하 신드롬은 이명박 정부가 꿈꾸었던 발작과 같다. 신드롬은 원어적으로 해석하면 ‘어떤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전염병과 같이 전체를 휩쓸게 되는 현상’으로 ‘증후군’과 다르지 않은 말이다.
감사원이 10일 공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설계·시공일괄입찰 등 주요계약 집행실태’ 감사결과는 전임 이명박 정부가 건설업체 담합을 사실상 방조하고 처벌 수위를 낮춰준 정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사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포기를 선언한 ‘대운하 공약’의 재추진을 염두에 두고 무리하게 4대강 사업을 진행하는 바람에 건설사들이 담합을 통해 공사를 나눠가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별다른 이유 없이 과징금을 사실상 깎아준 것으로 나타나 ‘봐주기 의혹’을 키웠다.
2009년 2월 당시 대통령실은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와 4대강 사업의 마스터플랜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여건 변화에 따라 운하가 재추진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앞서 2008년 6월 이 전 대통령이 포기 의사를 밝힌 대운하 사업으로의 변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GS건설, 대림산업 등 당시 1∼5위 건설사로 구성된 경부운하 컨소시엄이 그대로 유지된 채 4대강 사업 입찰에 참여하는 바람에 담합의 여지가 생겼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이들 건설사는 2009년 4월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같은 해 5월 설계담당자 회의를 개최하는 등 컨소시엄을 통해 사전 담합을 모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운하 추진안을 반영한 설계 탓에 4대강 보(洑) 설치 규모를 소형 4개에서 중대형 16개로 확대하고 준설량을 2억2000만㎥에서 5억7000만㎥로 늘려 관리비용 증가, 수질관리 곤란 등의 부작용을 야기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는 위나라 혜왕(惠王)과 그의 대신 방총이 나눈 대화가 실려있다. 방총은 태자를 수행하고 조(趙)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자신을 중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위 혜왕에게 몇 마디 아뢰게 된다.
만약 어떤 이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위 혜왕은 “그걸 누가 믿겠는가?”라고 하였다. 방총이 다시 “다른 사람이 또 와서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왕은 “그렇다면 반신반의하게 될 것이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방총이 “세 사람째 와서 똑같은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왕은 “곧 과인은 그것을 믿겠네”라고 하였다. 이에 방총은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三人言而成虎)”라고 말하며 그는 자신을 중상모략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않기를 청하였다.
4대강 사업이 그렇다.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들이 말하게 되면 진실처럼 들리게 돼 버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결과가 그렇게 됐다. 하지만 그 피해자가 국민이고 그런 국민들은 지금 분노로 들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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