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파업현장을 보면 마치 사이비 같다
[충일논단] 파업현장을 보면 마치 사이비 같다
  • 박해용 부국장 편집국 경제행정팀
  • 승인 2013.12.2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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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철도노조가 ‘수서 발(發) KTX 법인 설립’에 반발하며 시작된 철도파업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파업열차때문에 기간산업 타격이 커지고 국민불편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28일로 18일째 파업, 평행선을 달리던 열차는 여론에 밀려 스스로 얽어맸던 오라줄을 풀려하지만 자승자박의 끈이 길어 희망도 줄어들고 있는데 물밑은 여전히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간 치열한 접전이 진행 중이다.
정부와 경찰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지난 22일 민주노총 본부까지 진입하는 초강수를 두고도 연행에 실패하면서 노동계 전체의 거센 반발만 불러 일으켰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는 물론 야당과 시민 사회단체까지 가세한 극심한 ‘사회 갈등’으로 번지며 연말 정국을 어둡게 하고 있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9·10일로 예정된 수서 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며 8일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마지막 본교섭에 나섰지만 교섭이 중단되자 9일 오전 9시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반대 속에 코레일은 파업 다음날인 10일 오전 임시 이사회를 열어 수서 발 KTX 법인 설립·출자 계획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그러면서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 현재까지 참가 노조원 7712명을 직위 해제하는 초강수로 대응했다. 또 노조 지휘부 191명을 고소·고발해 이 가운데 2명이 구속됐고 26명이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다.
맹자(孟子) 진심장하(盡心章下)편에는 스승 맹자(孟子)와 제자인 만장(萬章)의 문답이 기록되어 있다. 만장이 온 고을이 다 그를 향원(鄕原)이라고 한다면 어디를 가나 향원일 터인데 공자께서 덕(德)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맹자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미워한다(惡似而非者).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곡식의 싹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망령됨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믿음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보라색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붉은 색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향원(세속에 따라 야합라는 위선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라고 하셨다 .
이는 항간에 떠도는 사이비(似而非)를 가리킨 말이다. 우리사회에서 양의 탈을 쓴 여우가 어디 이 뿐이랴만 철도를 놓고 벌이는 견주기도 그런 모양새다. 국익은 국민을 위한 이익을 가리킨다. 하지만 국익도 공익도 없어보이는 명분대립의 현장은 마치 겉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 결과 철도운행이 마비지경에 다다르고 있다. 더구나 대체된 인력의 피로누적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파업 초기 코레일은 필수유지인력 8418명과 대체인력 6035명을 모두 투입해 KTX와 수도권 전동열차, 통근 열차를 평상시와 같이 운행했다. 새마을·무궁화호 운행률도 75%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체인력 피로도와 사고 위험성이 커지면서 열차운행률은 갈수록 떨어져 국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
파업 3주째인 지난 23일부터는 KTX 운행률이 73%까지 낮아지고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도 평소의 56%, 61%만 각각 운행되는 등 전체 열차 운행률은 평시 대비 76.1%로 떨어졌다.
코레일은 파업 4주째인 30일부터는 필수유지 수준으로만 열차가 운행된다. 화물열차 운행률은 20%를 유지하게 된다. 필수유지 운행률은 KTX 56.9%, 무궁화호 63%, 새마을호 59.5%, 화물열차는 0%다.
화물열차 운행률은 파업 초기 40%대에서 30%대로 줄어들면서 연말 물류난이 가중됐다.
피해액수는 차치하고라도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피로도 누적과 대체인력의 경험 부족, 정비·점검불량 등으로 크고 작은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뿐만 아니다. 연말 질서유지에 힘써야 할 경찰력의 공백도 문제다. 치안력이 구멍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 경찰들까지 동원해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에 매달리다 보니 민생치안 범죄 대처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 모두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지만 지금 모양을 보면 국민은 없어 보인다.
당장 시멘트 등 철도에 의존했던 산업이 큰 타격을 입고있고 수많은 국민이 불편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연말연시 누려야 할 국민들의 여가권리도 박탈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구정 명절이 예약되지 못할 운명이 다가오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더 늦기전에 큰 그림을 보자. 그리고 본질로 돌아가자. 종교계가 나서고 정치계가 중재를 나선 것은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명분을 주는 것이어서 좋기는 하다. 하지만 본질을 가려두고 자기주장만을 고집하는 이들 양쪽 무리들이 모두 사이비로 보이는 것은 국민들에게 애써 진실성을 외면한 탓이 크기 때문이다.
사이비(似而非)는 큰 해악(害惡)이다. 하지만 사이비를 가려내지 못하는 것은 더 큰 해악이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진실의 무대에 올라서야 한다. 국민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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