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숭동(韓崇東)의 힐링캠프] 사람은 말(言)의 노예인가, 말(馬)의 주인인가?
[한숭동(韓崇東)의 힐링캠프] 사람은 말(言)의 노예인가, 말(馬)의 주인인가?
  • 한숭동 前 대덕대 총장·국립한국교통대학교 석좌교수
  • 승인 2014.01.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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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고대로부터 인간과 함께해왔다. 우리 민족과도 친숙하다. 우리 조상은 말을 타는 기마민족이었다. 신라 건국 신화 박혁거세의 탄생을 알린 것도 상서로운 흰 말이다. 화랑 시절 김유신은 천관녀와 사랑에 빠졌다. 충성스런 그의 말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주인을 천관녀의 집 앞에 내려다 놓는 충심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는 칼을 들어 말의 목을 내리쳤다. 말의 목을 벤 김유신, 그날부터 역사는 새롭게 시작됐다.
약 2900년 전에 탄생한 ‘일리아드’는 ‘오디세이’와 함께 서양 문화의 원류가 되는 서사시다. 워낙 방대한 만큼이나 그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단연 압권이라면 트로이의 목마로 얽힌 그리스와의 전쟁 부분. 그리스의 세 여신인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네’의 자존심을 건 미모 싸움에서 시작되어 ‘파리스’와 ‘헬레네’의 야반도주(?)로 치달은 트로이 전쟁은 무려 10년이나 지루한 공방을 주고받는다.
수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하다가 결국 전쟁의 승패는 목마에 숨어 있다가 야습을 감행한 그리스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트로이의 목마는 요즘 사이버 상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트로이의 목마’는 워낙 변종이 많아서 컴퓨터 바이러스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걸출한 풍자의 묘미를 다뤘다. 흔히 축약본 때문에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이 동화로만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걸리버 여행기’는 1부 소인국, 2부 거인국, 3부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 4부, 말들의 나라로 구성돼 있다. 이곳의 말은 매우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다. 반면에 노예 계급인 ‘야후’라고 불리는 인간은 원시적이고 사악하며 이기적이다. 18세기, 당시 유럽사회는 인간이 말의 노예가 되었다는 설정에 경악했다. 제리 양이 설립한 인터넷 포털 ‘야후 yahoo’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돈키호테’에서도 주인공만큼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바로 ‘로시난테’. 별 볼 일 없는 시골귀족인 알론조는 자신이 중세의 유명한 기사라는 착각에 빠져 세상의 정의를 실천한답시고 여행을 떠난다. 사실 ‘로시난테’도 주인처럼 늙고 병든 말이었지만, 다 무너져가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싸우는 돈키호테에게는 늠름한 준마로만 보였던 것이다.
1945년 출판된 ‘동물농장’에는 제목처럼 여러 마리의 동물이 등장한다. 돼지는 ‘혁명’의 정신적인 지도자 역할을 맡았다. 이상하게도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자나 독재자는 돼지를 닮았다. 그렇다. 권력과 탐욕에 물든 패거리는 돼지의 이미지가 가장 잘 어울린다.
여기서 말이 빠질 수는 없다. 우선 ‘복서’는 잔혹한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충성을 다하지만, 쓸모가 없어지자 도살장으로 팔려간다. 커다란 체격과 넘치는 힘으로 전투와 건설현장에서 맹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일만 하다가 쓸쓸히 생을 마친 셈이다. 허영심 강한 암컷 백마 ‘몰리’는 동물농장의 혁명에 관심 없다. 오직 자신의 외모만 신경 쓰다가, 각설탕에 홀려 옆집 농장에서 일하는 신세가 된다.
동물농장 내에서 최고의 지식인에 해당하는 늙은 당나귀 ‘벤저민’은 혁명에 매우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도 않고 그저 방관자로만 머문다. ‘복서’의 동료인 ‘클로버’는 ‘나폴레옹’의 독재를 의심하면서도, 질서에 편입되어 순응하는 방식을 택한다. 20세기 최고의 정치풍자 소설 중 하나인 ‘동물농장’의 다양한 캐릭터는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 현상과 너무나 많이 오버 랩 된다.
영화 ‘변호인’이 관람객 1000만명을 눈앞에 두고 큰 화제다. 하 수상한 시절마다 우리는 백마 타고 올 초인을 기다린다.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게끔 목 놓아 부르면서 말의 주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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