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만으로 가치있는 영화도 있다… ‘신이 보낸 사람’
주제만으로 가치있는 영화도 있다… ‘신이 보낸 사람’
실화 바탕으로 북한의 냉혹한 현실 담아
  • 뉴시스
  • 승인 2014.02.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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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하다. 믿기지 않는다. 이곳에서 사람은 너무 쉽게 상처를 입고(몸이든 마음이든) 간단하게 죽어나간다. 이유는, 없다. 없다고 봐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게 죽임을 당할 이유가 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지옥이다. 지옥이라고 말을 해야 겨우 설명이 된다.
그 지옥이 ‘영화 속 가상공간’이라면 혹은 ‘암울했던 역사의 한 부분’이라면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을 가슴 아픈 이야기 정도로 봐 넘길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명백한 현실이고 실재하는 공간이다. 북한은 그런 곳이다. 신앙의 자유가 완전히 거세된 곳. 마음 속까지 통제하려 드는 곳. 이런 곳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김진무 감독의 ‘신이 보낸 사람’이다.
‘예수쟁이’라는 이유로 1급 정치범으로 몰린 ‘철호’(김인권)는 아내를 잃고 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철호는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가라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북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탈북을 계획하던 중 철호는 1급 정치범으로 다시 고발당하고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신이 보낸 사람’은 관객을 끌만한 요소를 갖추지 못한 영화다. 무거운 주제의식과 해피엔딩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 암울한 현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옥죄어 온다.
돈을 내고 굳이 이런 불편함을 감내해야 할 이유는 없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건 우리와 상관 없는 일이 아닌가. 알지 못 할뿐더러 외면하고 싶기에 영화 속 인물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을 하기가 쉽지 않다.
미학적 성취가 뛰어난 영화도 아니다. 핸드헬드 방식의 촬영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왜 이 영화를, 이 주제를 그 방식으로 찍어야 했는지 명확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영화적 상징은 돌출돼 있고, 끝내 관객의 의문점을 해소해주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신이 보낸 사람’은 영화가 가진 문제의식을 단 한 순간도 허투로 다루지 않는다. 무서울 정도의 뚝심이다. 쉬운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관객을 울리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소재인가.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게,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게, 심지어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있다는 게 말이다.
김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희망이 없는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눈물로 가려버리지 않는다. 빨리 흐르고 쉽게 마르는 눈물 대신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어떤 감정을 관객에게 심어준다.
그 방법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관객이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것이다.
‘신이 보낸 사람’의 시사회가 끝난 후 김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절망을 정면으로 목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만이 진정한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김진무가 희망을 말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가 불편했다면 그것은 김진무 방식의 성공이다.
영화의 가치가 재미와 미학적 성취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쉽게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영화라는 형식은 또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철호’를 연기한 김인권은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연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마이웨이’에서 ‘종대’를 연기한 김인권이 최고다)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절망적인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인물을 과장 없이 표현해냈다.
‘신이 보낸 사람’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피어난 희망’이라는 홍보 문구로 영화를 설명한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에 희망이 있기는 한 것일까. 영화를 본 관객은 결국 한숨을 내쉬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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