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주민번호 없는 승선표
[충일논단] 주민번호 없는 승선표
  • 박해용 부국장 편집국 경제행정팀
  • 승인 2014.04.2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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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복잡한 비정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고는 종교집단을 모체로 하고 있으며 인천과 제주를 잇는 선박을 장기간 독점으로 운영하면서 철저하게 관의 비호를 받으며 독버섯처럼 기생한 어는 모순된 해운기업의 비극적 파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복합적 비정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는 사건이다.
이런 비정상이 선량한 대다수의 국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현실에 그저 어이가 없다는 점을 떠나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이 사고를 조사하는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조사결과와 언론보도를 통해 그 비정상의 실체가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수백 명의 인명을 무고하게 죽도록 만든 원인에는 우리 사회에 멍든 비정상의 관행화가 너무도 크게 자리잡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런 가운데 이번 세월호 탑승자 가운데는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신원정보가 누락된 ‘무기명’ 승선권이 37장이나 발견됐다. 청해진해운이 발행·검표한 탑승자 승선권을 사고 이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이 다시 점검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인데 이런 승선권때문에 아직도 해양 사고에서 탑승자 신원을 정확히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무기명 승선권이 쏟아져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해운조합의 허술한 여객·화물 관리감독 실태와 이를 악용한 해운사의 탈세 및 비자금 조성 관행은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지만 오랫동안 직원들이 뒤로 빼돌리거나 암묵적으로 탑승시킨 탑승자가 관행처럼 되풀이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관계자는 “청해진해운 선박에 정상 절차를 밟지 않고 승선하는 사람이 많아 탑승자 축소가 만연해 왔고, 그래서 회사가 나중에 적발될 상황에 대비해 미리 이름 없는 승선권을 관행적으로 발행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날 이 시각에 37명이 그렇게 탔으며 이들 역시 함께 사고를 당했다.
현행 탑승규칙은 여객선의 경우 발권한 승선권에 이름과 주민번호 앞자리 등 신상정보를 기재해야 탑승할 수 있다. 이를 적지 않으면 승선이 거부된다. 해양 사고의 특성상 탑승자의 정확한 신원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기명 승선권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건 그만큼 관리체계가 허술했다는 얘기고, 그 배경에는 해운사가 있다.
인천항의 승선권 발권 및 기록·통계 관리는 해운사들이 도맡아한다. 단골 고객 우대, 운임 후불 정산 등 상황에 따라 발권 시스템을 조작해도 이를 견제할 기관이 없다. 세월호 침몰 후 승객 명부에 없는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해운사들은 이렇게 허술한 관리감독 체계를 이용해 탑승 인원 및 화물 적재량을 축소 신고한 뒤 세금을 탈루하고 비자금을 조성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행태를 해운조합이 관리감독하게 돼 있는데 해운조합은 해운사들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아 운영된다. 해운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 해운사가 마음만 먹으면 승객과 화물을 조작해 탈법을 저지를 수 있는 구조다.
그러니 승객이 정식 입구가 아닌 화물차량 통로로 배에 걸어 들어가도 제지할 방법이 없고 이런 일들이 해운사의 묵인과 해운조합의 방조 아래 행해져 왔다.
더 큰 문제는 해운사와 해운조합에 대한 통제권한이 있는 해경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해운법에는 해양경찰청장이 선박 운항관리자의 직무수행을 지도·감독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해경은 처벌 규정이 없어 실질적 단속이 어렵다고만 밝히고 있다.
해경이 할 수 없다면 관리감독의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다는 것인데 그럴만큼 우리 사회가 허술하다는 방증이다.
300여 명의 사망기록, 아직 생존자 없는 해상선박의 침몰사고. 세월호 참사 그 이면에는 이처럼 썩어빠진 구조와 관행의 틀이 도사리고 있었다. 수백 명의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선장과 선원들 이면에는 이런 늪지대에서 허우적거리는 어른들의 낡아빠진 초라한 자화상이 있는 것이다. 이제 좀 벗어나야 한다. 아니 도려내야 할 것들을 아예 근본부터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큰 아픔을 겪어야 한다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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