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4월의 마지막날
[충일논단] 4월의 마지막날
  • 서세진 부장 당진주재
  • 승인 2014.04.29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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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아름답다던 4월이 시작된지 바로 엊그제 갔았는데 벌서 오늘이 4월의 마지막날이다
20세기 최고 최대의 걸작 시라고 불리는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황무지’의 서문은 아래 이런 시구절로 시작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차라리 겨울은/우리를 따뜻하게 하였다/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감싸고/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왜 T.S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하다고 했는가? 칼날처럼 내려꽂히는 이 시의 첫 선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4월을 잔인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슬프지 않은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흔드는 4월의 이 신비한 목숨이 너무 가엾지 않은가, 너무 서럽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오늘 드디어 내 방식대로 엘리엇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감싸고 마른 구근으로 생명을 키우고 있는 황무지의 겨울을 노래한 엘리엇의 백치의 평화로 돌아가고 싶다. 생의 욕망을 불어넣어 뜨거운 꿈을 탄생시키며 갖은 상처와 불행으로부터 생명을 앗아가는 4월의 잔인성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차라리 망각의 겨울, 모든 생명의 싹을 냉엄한 땅이 억누르고 있었던 죽음의 겨울은 얼마나 평온한 것인가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의 평화를 잊고 생명을 키우고 목숨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운명은 누가 내린 형벌인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 기대어 희망을 이야기할 것인가? 우리는 실낱같은 목숨을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것인가? 불완전한 세상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행 속에 살아야 하는 불안과 공포를 우리는 무엇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메마른 사회의 체질화된 구조와 그 안에서 메말라 가는 인간 영혼의 황폐화 속에서 우리가 두려워했던 지옥은 형성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지옥과 천당은 우리가 남겨둔 저 세상의 것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오늘이 아닐까? 삶의 고통과 죽음의 처참함을 견디며 목이 메도록 불렀던 신의 이름, 신의 보이지 않는 가슴에 손을 얹고 한없이 기도했던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은 차가운 망망대해 어디에서 헤매고 있는 것일까? 절박한 고통 앞에서 존재의 중심이랄 수 있는 신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분노하는 슬픔 앞에 믿음도 희망도 흔들리고 있다.
1912년 4월 이 지구상에 전설의 배로 남아있는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빙산 경고를 무시하고 속도 경쟁을 하다가 빙산과 충돌한 후 차가운 대서양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 배를 책임진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끝까지 배에 남아 항해사와 기관사들을 지휘하며 2200명의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사망했다.
빙산 경고를 무시하고 속도를 냈던 자책감에 스스로 탈출을 포기한 채 조타실 문을 잠그고 배를 지켰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본 선상 악단의 눈물겨운 연주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생과 사의 숨 막히는 긴박감 속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승객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연주로 최선을 다하던 그들도 바이올린을 껴안고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지난 25일 334여 명의 탑승자를 태우고 대서양 카나리아 제도 인근 해역을 지나던 스페인 여객선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희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무책임한 승무원들과 부족한 초기대응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세월호 참사’와 비교되는 장면이다. 세월호의 선장은 가장 먼저 배를 버리고 나와 구속 수감중에 세끼 밥을 매번 잘 챙겨먹고 잠도 편히 잘 자고 있다는 소식에 차마 말문이 닫힌다
부모와 오빠를 잃고 홀로 구조된 6살 어린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보면서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희생양이라고 쓰며 나는 이시간도 울먹인다.
질서와 원칙을 지키고 어른들의 말에 무조건 공경하라던 가르침을 자신을 위협하는 위험 속에서도 지키려 했던 아이들, 별과 꽃과 꿈의 노래로 가득했던 아이들을 차가운 물속에 남겨두고 죄 많은 어른은 서로 질타하며 잔인하기만 했던 4월의 마지막날를 보낸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우리 어른들의 4월도 침몰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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