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88분간의 SOS
[충일논단] 88분간의 SOS
  • 한내국 부국장 편집국 정치행정팀
  • 승인 2014.04.3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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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하고 2주일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이 기간은 우리 국민 모두를 패닉으로 몰아 갔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자괴감과 함께 수치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88분간의 SOS. 이는 이번 사고현장의 중심에서 이 땅의 어른들을 믿었고 또 존경하며 사랑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보낸 메시지며 절규다.
학생들, 설마 이렇게 큰 배가…, - 최모(사망)군, 전남 소방본부에 첫 신고. “배가 기울고 있어요”(8시 52분), - “아, 기울어졌어”, “쏠리는 거 장난 아니야”, “신난다”, “페이스북에 올리면 재미있겠다”, “아까보다 괜찮아진 것 같아”- 선내방송;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시작에 우리 자녀들의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 아이들은 이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 (해양경찰청 제공)- 조타실·기관실서 승무원들끼리 무선 교신.
▲학생들, 설마가 혹시로…- “구명조끼 입어. 너도”, “내것 입어”, “선장은 뭐하길래”, “진짜 타이타닉 된 거 같아”, “제발. 살 수만 있다면”, “엄마, 아빠, 아빠, 아빠, 내 동생 어떡하지?”(학생들 대화)
- “사랑해”, “(선생님) 조끼 입으셨어요”, “살아서 만나자”(학생·교사 단체 카카오톡)
- 선내 방송; “단원고 학생 여러분 및 선생님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학생들 “예” 대답.
그리고 배는 아이들과 함께 물 속에 잠겼다. 14일이 지난 지금 그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또 여전히 물 속에 남겨져 있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단원고 학생 다수를 포함한 실종자 109명은 그동안 수색에도 아직 대답이 없다.
승객 구조를 외면하고 먼저 탈출한 주요 승무원 15명은 구속됐다.
가장 먼저 도착하고서도 선원들을 구하느라 학생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해경도 상황실 압수수색 등 수사대상으로 전락했다.
당초 선원과 학생들은 하나의 ‘공동체’였지만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기만에 가까운 선내 방송은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승무원들이 뒤늦게라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이유다.
검경 합동수사본부, 해경, 언론을 통해 공개된 영상,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토대로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16일 오전 8시 49분부터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가 전송된 10시 17분까지 88분간 세월호에서 보낸 구조 요청을 기록했다.
외국에서는 이 사고를 두고 ‘눈부신 경제성장 속에 가려진 한국인들의 후진적 의식구조’가 빚은 사고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당초 선원과 학생들은 하나의 ‘공동체’였지만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기만에 가까운 선내 방송은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승무원들이 뒤늦게라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이유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땅의 어른들이 받아야 할 단죄만 남아있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이 어떻게 이 단죄를 받아들일까를 들여다 보면 속죄해야 할 모양새가 참 궁색하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상황을 찍은 두 개의 공개된 동영상. 배가 기우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서로 챙겨주고 지시에 따르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 승객을 버리고 속옷 차림으로 홀로 탈출하는 선장의 모습이 너무도 대비된다.
단원고 학생이 촬영한 동영상에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배가 기우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할까 고민하지만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끝까지 선실에서 기다렸다. 반복되는 안내방송에 “예”라는 대답마저 여기저기서 나왔다. 구명조끼가 모자라자 친구에게 “내 것 입어”라며 양보했다. 갑판 위에 있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혹시 바다에 떨어지지 않았을까 걱정까지 했다.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내용이다.
비슷한 시간, 선장과 선원들은 어린 학생을 남겨두고 배를 빠져나가기에 바빴다. 해경이 어제 공개한 침몰 당시 최초 구조상황을 찍은 동영상에는 부끄러운 어른들의 행동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준석 선장은 속옷 차림으로 발버둥치며 경비정에 옮겨 탔다. 선원들은 제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가장 먼저 도착한 구조정에 올라탔다. 이들이 배를 빠져나오기 직전 약 40분 동안 청해진해운과 통화했다고 하니 ‘새빨간 거짓말’이 온 나라 부모들을 분노하게 한다. 그들은 “상황이 급박해 승객을 구조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직업윤리는커녕 인간의 도리마저 저버린 선장과 선원들의 민낯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스페인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승객과 선원 334명이 탄 스페인 여객선에서 지난 25일 화재가 발생했다. 선장은 항만관제센터에 보고한 뒤 승객을 대비시켰다. 선원들은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을 절반으로 나눠 배의 좌우현 갑판에 나가 구조에 대비하도록 했다. 여객선은 화재 발생 30분 만에 항구로 돌아왔다. 설사 배가 침몰했더라도 승객들은 모두 구조됐을 터다. 세월호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맹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는 공손추와 맹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고 나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송(宋)나라의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그 농부는 자기가 심은 곡식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싹들은 뽑아 올렸으나, 그 싹들은 모두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잘 되게 하려고 했던 농부의 행동은 오히려 무익(無益)의 정도를 넘어서 해악(害惡)이 되었던 것이다.
이 말은 조장(助長)이라는 말이다. 문자적으로 도와서 성장시키다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모두 망쳐버리다라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한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싹과 같은 우리의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그리고 과외 학원을 전전하며 뿌리가 흔들리도록 조장(助長)되고 있는 현실에서 맹자는 아이들을 가르침에 마음을 망령되이 갖지 말며(心勿忘), 무리하여 잘 되게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勿助長也)고 우리 어른들에게 가르치고 있다.우리 어른들이 이 과정과 이후 우리 아이들을 위해 통절한 반성과 용서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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