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쇄신과 개조
[충일논단] 쇄신과 개조
  • 박해용 부국장 편집국 경제행정팀
  • 승인 2014.05.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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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을 쇄신하고 국가를 개조한다는 말이 버릇처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것을 그렇게 만드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유전자들의 결합체가 인간사회라면 이를 다시 고쳐잡는데는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불가능의 개념을 우리가 손쉽게 사용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전적 용어로 쇄신은 ‘나쁜 폐단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하지만 개조는 ‘좋아지게 고쳐 만들거나 바꾸다’라는 뜻이다. 이들 두 용어는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어감상 쇄신이 강해보이나 들여다 보면 개조가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등장하는 용어가 ‘국가개조’다. 이는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꾸라는 뜻이다. 그러려면 지난 것은 버려야만 한다. 그게 가능한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 앞에 직접 고개숙여 공식 사과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34일째만이고,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석상에서의 간접사과 등에 이은 다섯 번째 사과다.
박 대통령은 먼저 해경의 구조업무를 ‘실패’로 규정했다. 해경의 총체적 무능의 배경엔 개선이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보고 구난관련기능 외엔 경찰과 조직을 통합운영키로 했다.
분리 18년만이다. 안행부와 해수부도 안전 및 재난관리 기능은 신설될 국가안전처로 넘기고 행정자치 및 해양관련 고유업무만으로 기능을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실상 분해수순이다.
국가안전처는 각 부서에 분산된 기능을 합쳐 명실상부한 재난관련 컨트롤타워로 자리잡도록 제도와 예산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도록 했다. 이와 함께 참사를 유발한 근본원인으로 지목된 민관유착, 특히 ‘관피아’ 논란과 관련해서는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기간 및 범위의 확대, 공무원 채용제도 개선 등을 통한 공무원 전문성 강화, 민관유착 비리의 척결과 엄중한 민형사상 책임추궁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한 특검 가능성도 열어놓았고,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하는 특별법도 제안했다.
예상을 웃돌거나 못미치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참사후 지금까지 각계에서 제기된 문제점과 대책을 망라한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조는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제시한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 등 국가재난시스템 개조 방안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특히 해양경찰 조직을 경찰(육지경찰)과 국가안전처로 분리하게 될 경우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의 해양주권 수호 기능이 약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여야 정치권과 전문가들에게서 분출하고 있다. 실제로 요즘 산란기 꽃게철에 서해상에서는 중국 어선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조직이 와해 위기를 맞고 있는 해경이 중국의 불법조업 단속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오성홍기를 매단 중국 어선들이 꽃게와 온갖 어류를 싹쓸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직이 어수선하다 해도 항상 이맘 때면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극성을 부려 특별경계기간으로 설정해 단속을 벌여왔던 해경이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해경은 세월호 수습 구조 때문이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7000여 명에 달하는 해경인력이 모두 그 일에 매달려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해경의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모습으로 인해 국민이 절망하고 분노한 것이며, 결국 박 대통령으로부터 조직 해체라는 극약처방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은 분명 해양 안전의 큰 틀을 새로 짜야 할 때인 것은 맞다. 대대적인 시스템 개편과 공직사회의 의식개혁이 병행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대위기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슬픔, 공분에 휩싸여 있는 대한민국호를 다시 추스르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데도 일정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국가개조에 버금가는 정부조직 개편이 단지 성난 민심달래기 차원으로만 진행돼서는 안 된다. 충분한 검토와 이성적인 논의가 필요하단 얘기다.
특히 경비와 단속 업무는 국가안전처가, 수사는 육지경찰이 맡은 이원화 방식은 중국 어선을 나포해도 수사를 위해서는 중국 어민들을 육상으로 압송해 경찰청에 인계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길 없다. 비단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단속뿐 아니라 현재 한반도 주변 정세를 볼때도 해양경비를 소홀히 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이어도와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시도하고 있는 독도 등 바다 주권을 지키는 경계 경비 업무는 그동안 해양경찰이 담당해왔는데 이를 국가안전처내의 하나의 실국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여부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해양 구조·구난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해양 주권과 직결되는 경비·경계 업무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둘을 모두 강화하는 것이 방향성에서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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