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눈물바다 된 법정
[충일논단]눈물바다 된 법정
  • 길상훈 기자
  • 승인 2014.06.18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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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인해 남겨진 과제를 채 시작도 하기전에 주범없는 재판이 열리면서 법정은 탄식과 오열로 다시금 가슴을 저미게 하고 있다. 피의자들은 이번 일을 모두 윗선으로 떠밀면서 하나마나한 재판으로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는데 주범 유병언 일가는 여전히 행방조차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멍든 가슴을 더욱 멍하게 한다. 당시 승객 구조업무를 소홀히 한 선장 이준석(69)씨 등 승무원 15명에 대한 두 번째 재판, 또 다시 오열하는 가족들. 그러면서 가족들은 승무원들이 거짓 진술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재판부에 사고 원인과 참사 책임에 대한 명확한 진실 규명을 요구했다. 재판정은 그러나 진실이 사라진 상태다. 주범없는 재판장엔 말 그대로 호가호위한 여우들만 있고 눈 먼 호랑이가 붙잡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책 초책에는 눈 먼 호랑이 얘기가 전해온다. 기원전 4세기 초 중국의 전국시대 초나라의 선왕(宣王)때 이야기다. 선왕이 위(魏)나라 출신의 신하인 강을(江乙)에게 북방 강대국들이 초나라 재상(宰相)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 하는 이유를 묻는 대목이 실려 있다. 강을은 여우와 호랑이의 고사를 인용하며 즉, 짐승들이 두려워 한 것은 여우가 아니라 그의 뒤에 있던 호랑이였다는 것이다. 이는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 재상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선왕의 강병(强兵)임을 비유한 것이었다. 한국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가 근간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데 이는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권세나 배경을 빌어 위세 부리는 사람으로 인한 사고 하나가 그 단면을 드러내게 한 때문이다. 종교를 빙자한 인간의 헛된 망상이 만들어 낸 사회악을 방치한 결과가 오늘의 참담한 현실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쁜 것은 죽은 사자의 탈을 쓴 나귀보다는 살아있는 호랑이를 꼬여 뭇 짐승들을 속인 여우쪽이 훨씬 교활하고 가증스럽다. 이들 무리와 어우러져 이 무리들이 활개하도록 방조한 세력들이 더 나쁘다. 때문에 대통령은 이 사고에 대해 국민들을 향해 눈물의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발본색원을 외치고 국가를 반드시 개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주범을 향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됐고 주범없는 동조자들만 구속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번째 재판에서 유족들은 거듭 ‘진실’을 외치며 또 다시 절규했다. 하지만 주범으로 지목된 유병언과 그 일당의 행방은 이 땅에서 오리무중이다. 또 다시 재판정. 방청석에 앉아 비교적 차분하게 재판을 지켜보던 피해자 가족들을 울부짖게 만든 것은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한 여학생 어머니의 절규였다. 이 어머니는 부장판사에게 발언 요청을 한 뒤 재판부에 “아이들 때문에 아픈 엄마, 아빠들이 많아서 다음에 이 자리에 못 올 수도 있어 부탁드린다.”며 “시간이 지나도 이것만은 꼭 알아봐 달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 아이와 (사고 당일)오전 10시 11분부터 5분 동안 통화했다.”며 “‘엄마 울지마. 금방 구조돼서 나갈게’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긴 우리 아이가 6일 만에 물속으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발언을 듣고 있던 다른 학부모들과 피해자 가족들도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리자 법정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말을 잇지 못하던 부장판사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가족분들에게 요청 드린다. 동영상이 있으면 꼭 제출해 달라. 검찰을 통해서 증거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단원고 학부모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구명조끼를 입힐 정도면서 급격히 침몰할 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며 “왜 선원들은 갑판 위에 다 올라가 있었나.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피해자 가족 역시 “청해진 해운이 1년 전 세월호를 증축한 뒤 배의 위험성을 알고 이미 떠난 선원들도 있다.”며 “선원들이 신변의 위험을 알고 선원들이 떠난 배다. 선장 등에 대해서는 퇴선 명령이 언제 이뤄졌느냐, 왜 안 했느냐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시각 피고인들 중 누군가 졸고있었다. “나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미워한다(惡似而非者).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곡식의 싹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망령됨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믿음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보라, 색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붉은 색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향원(세속에 따라 야합라는 위선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공자가 사이비(似而非)를 비유한 말이다. 여우 같은 사람과 여우의 잔꾀에 속아 넘어간 눈먼 호랑이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는 전에 없이 뒤숭숭하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시대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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