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벼랑 끝에선 노(老)년의 언론인
[충일논단] 벼랑 끝에선 노(老)년의 언론인
  • 서중권 편집이사
  • 승인 2014.06.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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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 못하면 이 땅에서 못 살아”
절규하는 노년의 언론인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19일 정부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절규한 이 한마디는 그의 참담한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에 앞서 10일 기자회견 도중 요란스러운 천둥과 섬광이 교차했고 비바람도 거셌지만 노신사(66)의 표정엔 행복감이 가득했다.
구름같이 몰려든 기자들의 시선 집중과 작렬하는 플래시에 ‘내게 드디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할 기회가 왔구나…’라는 확신을 가졌을 법했다.
범상치 않은 등장이었지만 앞으로 걷게 될 가시밭길의 전조(前兆)라고 자각하지는 못했으리라. “우리 후배들…” 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던 언론인들이 던질 세상에서 제일 아픈 말의 비수(匕首)에 맞을 운명이었단 사실도.
돌이켜보면 기회는 있었다고 본다. ‘하나님의 뜻’ 동영상이 파문을 일으킨 직후 11일 출근길에서 기자들에게 “사과는 무슨 사과”라고만 안 했어도. 발끈한 마음에, 자신의 발언이 거두절미됐다며 “언론의 명예훼손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하지 않았어도. ‘고생하는’ 기자들에게 “칼럼이나 읽어보고 말하라”고 대선배답지 않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19일엔 안중근 의사, 안창호 선생을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
소년 다윗처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번 ‘설화’ 때문에 많은 밤을 고민하며 ‘현역 기자 시절 숱하게 논(論)하고 설(說)했던 ‘박심(朴心·박근혜의 마음)의 실체가 이런 거였나’라고 탄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모든 것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꿈꿨던 문창극 본인의 선택이었음을. 불퇴전의 각오도 뚜렷해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차갑기만 하다. 해외 순방 중엔 외교적·경제적 이슈에 집중해야 하니 귀국한 뒤 임명동의안 국회 제출 재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만 했다.
주변에선 설이 무성하다. 청와대가 이미 ‘문창극 카드’를 버렸다더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여권 핵심은 후임자 물색에 나섰다더라, 22일이 ‘디데이’라더라…. 모든 게 문 후보자가 썼던 ‘박근혜 현상’(2011년 4월) 지적대로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마디 하면 주변의 참모가 이를 해석하고 언론은 그것을 대서특필한다. (중략) 자유인인 지금도 이럴진대 만약 실제 권력의 자리에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기막힌 탁견(卓見)이었다고 하면 비아냥거림으로 들릴까?
박 대통령은 10일 문 후보자 선택의 이유로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을 분’이라고 했다.
물론 대변인의 입을 빌렸다.
문 후보자가 박 대통령과 직접 만나 ‘세월호 민심’을 수습하고 난마처럼 얽힌 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해 의기투합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이미 ‘박근혜 사람’이 된 이들도 자기가 왜 장관을 하고 수석을 하고 있는지 ‘창의적 해석’을 하고 있는 판에 뭘 기대하랴. 문 후보자는 박 대통령의 최우선 선택지도 아니었다.
그가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그를 예우하는 게 아니라 ‘보수 논객’이 설 수 있는 마지막 자리마저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진짜 고민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거취일 수 있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김기춘의 ‘유효기간’은 다했다고 보고 있다.
시간만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아직도 총리지만 정홍원의 사의 표명일부터 따지면 54일째 총리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각부 장관과 수석의 공백일을 단순 합산하면 놀라운 숫자가 나온다. 608일. 지난해 2월 25일 출범해 480일을 보낸 박근혜 정부가 처한 기막힌 현실이다
필자는 노년의 언론인이 여론의 뭇매를 맞아가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조속한 시일 내 마무리 돼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이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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