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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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와 여신의 미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01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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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와 부세르의 ‘목욕을 끝낸 디아나’. 그림왼쪽에 화살통과 사냥개들이 보이고, 오른쪽 아래에는 사냥감이 놓여있다. 신화속의 아르테미스, 디아나는 현대에 이르러 원더우먼의 캐릭터로 변하였다.
전 회에서 약간 언급했듯이 그리스 신화에서 여신의 미(美)는 즐거움을 느끼는 대상이 아니다.
여신의 영역 또한 불가침의 영역이다.
아르테미스 여신에서 볼 수 있듯이 미는 바로 파괴의 권한을 가진 위험한 자격(資格)이며, 여신이 가진 권위는 순수함을 지키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도덕적, 사회적인 힘이다.
따라서 여신을 엿본 자는 항상 트랩에 걸려 죽게 되는 비극의 대상이 된다.
그리스의 이교도적 전통에 의하면 아르테미스 여신자신이 “누구도 나의 베일을 벗겨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고 전한다.
자신의 권위를 엿보거나 넘보는 자는 그 어느 누구라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남성들에게 포고한 셈이다.
그녀가 말한 베일은 사실 점잖은 표현일 뿐, 베일이 문제가 아니라 여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옷, 그리고 자존심과 권위라는 옷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프레이저의 말을 인용하면 아르테미스 여신은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배우자 없는 어머니, 모신(母神)이다.
모두가 나의 자손이며, 누구도 허락 없이 나에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접근하는 것은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내가 내리는 저주의 이유다”
이 선언은 아르테미스 여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고를 뿐 자격 없는 자들이 자신을 사랑하거나 처녀신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되며, 이를 어기면 피를 바쳐야 다는 경고가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그녀가 이런 선언을 했다고 해서 사랑을 거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는 미소년을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아름다운 청년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사실로 드러난다.
아르테미스는 그녀의 언니 에오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연정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 여신이 사랑했던 젊은 소년은 양치기 엔디미온이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라트모스 산에서 양을 기르는 아름다운 소년 엔디미온을 보고 그 차디찬 심장이 따뜻해질 정도로 인간을 사랑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소년이 잠들 때, 몰래 내려와 키스를 하고 지켜주기도 했다.
존 플래처(1579-1625)는 ‘절개 굳은 양치기 여인’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을 냉혹한 성격이 아니라 아름다운 소년을 보고 이내 사랑에 바지는 캐릭터로 이렇게 표현하였다.
“창백한 아르테미스 여신은 숲 속에서 사냥할 때 젊은 엔디미온을 만나 그의 눈에서 받은 결코 끌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의 불꽃에 몸을 태웠네.
거기서 그녀는 그를 잠들게 하고, 볼에다 양귀비를 단 채 라트모스의 높은 봉우리에 조용히 데려다가 밤마다 몸을 굽혀, 태양의 빛으로 산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그리운 연인에게 키스하네”
결국 신화 속의 여신은 자신의 권위와 영역을 침범한 자를 파괴할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을 가졌다.
이것은 여신이 가진 파괴적인 본능이라기보다는 순수함을 지키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도덕적, 사회적인 힘으로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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