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6’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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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앙코르 제국의 기록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2.01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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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미니크 수도사의 이 기록은 앙코르 와트가 메콩강 연안에 위치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매우 낭만적이다. 앙코르 와트가 다섯 개의 봉우리를 가진 도시라는 표현도 웃음을 자아내지만 16세기 에 황금을 좇아 탐험하던 여행가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만은 분명했다.
▲16세기 앙코르 와트의 복원

앙코르 와트 함락되어 약 100년의 시간이 흐른 후, 1526년에 앙찬 1세(1516-1566)가 즉위한 후 일시적으로 국력을 회복했다.
그는 현재의 프놈펜의 북쪽 65km 지점의 로벡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고 1550년경에 앙코르 왕도를 밀림 속에서 발견하였다.
역대 왕들이 만든 유적을 폐허가 된 모습으로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이 폐허 안에서 앙코르 와트만은 아직도 민중의 신앙의 대상인 불교 성지로서 활용되고 있었다.
앙찬 1세는 1564년에 앙코르 와트의 벽면 부조에서 미완성으로 남은 제1회랑의 북측면에 부조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완성은 그의 아들(Barom Reachea, 1566-1576) 대에 가서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즉위 한 체타 1세(ChettaⅠ, 1576-1594)는 구 왕도 앙코르 와트에 주민들을 이주시켜 앙코르 톰을 개수하여 아유타야에 빼앗긴 옛 영토 회복에 노력했다.
앙찬 1세로부터 체타 1세에 걸친 약 반세기는 캄보디아를 압박하던 타이의 아유타야가 신흥 세력인 미얀마의 타웅우 왕조(Toungoo, 1531-1752)에 의해 점령되는 등 일시적으로 힘이 쇠약해지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평온은 계속되지 않았고, 16세기 말에는 다시 아유타야의 침략으로 수도 로벡이 함락되었다.
그 이후, 캄보디아는 두 번 다시 앙코르 왕조와 같은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타이와 베트남의 협공을 받았고 역사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앙찬 1세는 어떤 생각으로 앙코르 왕도를 복원하려고 했을까?
앙코르의 영광을 한번 더 재현하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타이에 빼앗긴 캄보디아의 영토와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배 영역을 확대하는 것과 동시에 국민들에게 사원 건립을 부과하여 국가의 영광을 국내외에 과시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친 태국이 침략에 국력을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앙코르 와트를 만든 수리야바르만 2세의 유업을 계승, 완성시키는 것으로 스스로의 책무를 완수하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앙 찬 1세의 앙코르 와트 회복은 미완성으로 끝났으나 국가의 영광을 스스로의 손으로 되찾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항해자들이 본 16-18세기의 앙코르 왕도

16세기에 앙코르 왕도는 동남아시아의 말라카를 정복한 스페인 참험대와 선교사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앙코르의 왕들이 스페인사람들에게 원조를 요청하면서 이곳을 방문한 선교사 리바드네이라(Ribadeneyra)는 1601년에 쓴 도서부의 역사(Historica de las islas del Archipelago)에서 고대도시의 유적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였다.
“고대도시의 폐허에 캄보디아란 나라가 있다. 이 도시는 혹자에 의하면 로마인들이 세웠다고도 하고, 알렉산더 대왕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이 폐허에 원주민 누구도 살지 않으며, 단지 야생동물의 보금자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폐허는 앙코르 톰을 지칭한 것이었으며, 앙코르 와트에 대한 기록은 1595-1603년에 이곳을 방문한 도미니카 수도사 산 안토니오가 1604년에 발간한 캄보디아의 기록에 등장한다.
이 기록은 1901년 파리에서 프랑스어로 소개되어 유럽인에게 알려졌다.
“1570년, 이 왕국에 한 도시가 발견되었으나 이전에 살던 원주민들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도시는 메콩강 연안으로부터 170리그(1리그는 약 4.8㎞)의 거리에 위치한다.
주위가 4리그에 달하는 견고한 돌로 만들어진 주벽, 4장이나 되는 두께, 5장이나 되는 높이에 매우 촘촘한 총안을 갖춘 놀라운 도시가 있다.
이 곳은 코끼리, 호랑이, 독수리, 개 등의 동물이 묘사되어 있으며 많은 도구들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사원은 매우 섬세한 석재로 만들어졌고, 일정한 간격의 회랑을 따라서 건축되었다.
이 건축물의 솜씨는 대문, 안마당, 회의장, 공간이 로마식과 유사하다. 분수와 깨긋한 운하도 보이며, 사원과 광장을 흔히 볼 수 있다. …
캄보디아인들은 이 사원을 앙고르(Angor)라 부르고 있는데, 이 단어는 다섯 개의 탑을 가지고 있어서 다섯 봉우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성 도미니크 수도회와 동인도회사의 명령으로 우리의 신부 폰세카는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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