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마음속 악마키우는 갑질 사회, 달라져야 한다
[월요논단] 마음속 악마키우는 갑질 사회, 달라져야 한다
  • 임명섭 논설고문
  • 승인 2015.01.11 0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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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적 강자와 약자를 뜻하는 용어로 갑을(甲乙)이 확대, 사용되고 있다. 지위가 높거나 금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부당하게 약자를 핍박하는 행위를 비하해 흔히 ‘갑질’이라 부른다. 이런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세칭 ‘갑질’로 뭇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 곤욕을 치른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래서 갑, 을 갈등은 비단 ‘재벌과 하인’ 관계가 아닌 곳곳에서 다양하다. 지난해는 서울 압구정동 한 고급 아파트에서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폭언, 폭행을 일삼아 한 경비원이 분신까지 했다. 또 학문의 전당인 대학조차 일부 몰지각한 교수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 학생에게 금전적 착취나 성추행을 저지르는 일도 있었다.
이런 ‘갑’들의 수난은 이것만이 아니다.갑질의 행위로 지탄을 받은 사람들은 정치인, 판검사, 기업인, 재벌 3세, 대기업 임원 등 다양했다. 이들의 갑질은 노동 착취,음주 추태, 폭언, 폭행, 성희롱 등으로 다양했다. 갑, 을의 갈등에는 돈이나 권력 등에 기반한 뿌리 깊은 계급의식도 숨겨 있었다.
진위가 무엇이든 특권이라는 ‘갑’의 횡포에 무릎 꿇은 ‘을’의 모습은 부조리한 갑, 을 관계의 전형적 아이콘이다. 그것은 언제든지 우리의 자화상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말 세상을 뒤흔들어 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으로 갑질논란이 들끊어 후폭풍이 가라앉기도 전에 정초부터 또 다시 불미스러운 갑의 횡포 논란을 달구었다.
이번에는 백화점에서 주차 요원에게 폭언을 하고 무릎을 꿇린 모녀의 갑질 횡포다. 갑의 횡포는 부천의 한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자기가 타고 온 차량을 시동을 건 채 쇼핑 중인 딸을 기다리던 중 주차요원이 차량 이동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됐다.
문제의 차량은 주차장 통로에서 움직이지 않자 주차요원이 주먹으로 허공을 가르는 듯한 행동하며 이동을 유도했다. 이를 본 차량 운전자의 딸이 아르바이트 주차 요원 3명을 주차장 바닥에 무릎을 꿇게 하고 폭언을 했다는 것이다. 주차요원의 행동이 발단이 되긴 했지만 무릎까지 굻린 모녀의 처사가 ‘갑의 횡포’에 대한 분노와 을의 처지에 대한 공감이 더해져 사회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이처럼 ‘갑질’은 우리 사회의 공공의 적이된지 오래지만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제는 참고 견디던 을들이 왜 요즘 들어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인가? 우선 을의 권익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민주교육을 받아 만인이 평등하며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런 신세대는 상황적 차이로 을이 되었을 뿐 신분 자체가 갑에게 종속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또 인격적으로 갑과 동등한데 갑질을 당하면 반발한다. 기성세대와 달리 먹고살기 위해 직장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같은 갑질의 횡포는 그동안 금력이나 권력에 의해 묻혀왔으나 이제는 다른 시대로 변하고 있다.
을이 갑의 부당한 행위를 세상에 알릴 길이 환하게 트였기 때문이다. 갑질의 사건이 그 즉시 알릴 수 있는 공통점은 SNS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인터넷에 의해 확산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기껏해야 언론에 제보하거나 대자보를 붙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때문에 기사화되려면 사실 확인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을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갑의 영향력이 행사되어 차단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SNS에 올라가면 순식간에 유포되어 언론의 주목을 끈다. 갑에게 이를 막을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
갑이 사실을 은폐하거나 호도하려고 시도할 경우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켜 사태를 악화시킨다. 이제는 큰소리치며 반말하면 대단한 사람으로 대우해주던 사회적 인식이 사라지고 있다. 때문에 시대적 변화를 깨닫지 않고 자칫 갑질속에서 살다보면 신세를 망칠 수도 있다.
돈과 권력으로 바꿀 수 없는 인간의 기본권리를 존중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물론 누구든 대우받고 인정받고 싶은건 인지상정이다. 이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악용해 대우를 강요하는 것은 비행기 안에서도 주차장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사회에서 막말과 폭력으로 값싼 대우를 받으려는 천박하고 저급한 문화는 마땅이 없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정사회 구현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을미년 새해에 우리 스스로가 약자 앞에서 계급의식, 특권의식, 금력 등으로 튀어나올 마음속 악마를 키우고 있지 않은지 갑을에서 벗어나 모두가 돌아 보아야 할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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