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낙인 칼럼] 남이 잘되는 것 못 보는 사람
[송낙인 칼럼] 남이 잘되는 것 못 보는 사람
  • 송낙인 본부장 서부취재본부
  • 승인 2015.03.0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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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꼭 이상한 사람이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남이 잘 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잘 되는 걸 본 일이 있는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다.
소위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텐데.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어찌하겠는가? 다 생긴 대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개미처럼 사는 사람들, 긍정을 잊어버리고 부정만 생각하는 사람의 글을 읽지 말고 왕따를 시켜 놓아야 한다.
적절한 질투와 불안은 모든 경쟁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인이다.
그러나 모든 경쟁을 없앤 자유평등사회에서도 선망과 질투는 여전히 그 불씨를 안고 있다. 사람의 욕망과 탐욕은 그만큼 뿌리 깊은 것이다.
인간의 선망과 질투의 뿌리는 출생 직후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빨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 영국의 분석가 멜라니 클라인의 말이다. 그 여파는 성장과정을 통해 계속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라고 했다.
실제로 어린이들은 부모의 애정을 독차지하기 위해 형제들끼리도 서로 질투하고 경쟁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따돌리고 엄마를 독차지한 아버지에게도 강한 질투심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오이디푸스 갈등의 핵심을 이루는 거세불안이나 남근선망도 바로 그런 강한 질투와 경쟁에서 비롯된 갈등상황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엄마를 독차지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강력한 라이벌인 아버지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현상이 오이디푸스 갈등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질투는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라 하겠다.
한국 사회에는 고위층에 대한 ‘냉소(冷笑)세력’이 있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집착은 강하다. 이들은 고위층이 성공한 고위층이 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의 심리적 배경은 여러 종류다.
고위층이 성공하면 다음 선거 등에서 상황이 어렵다는 판단을 하거나, 혹은 과거 군부정권에 대한 진한 반감(反感), 당선을 도왔는데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배신감, 지식인이라면 영원히 권력을 공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자기 처지에 대한 분풀이, 이도 저도 아니라 그저 세상과 권력에 대한 시기다.
냉소세력은 냉혹하다. 고위층의 장점은 화투패처럼 감추고 단점은 양파껍질처럼 벗긴다. 그들은 점잖게 “고위층이나 여당은 약하고 야당이나 종북세력은 강하다.”고 말한다.
이 나라의 냉소세력에게 고위층을 공격하는 건 강아지를 발로 차는 것처럼 쉬운 일이 돼 버린 것이 현실이다.
이 사회에는 냉소세력 말고 비판세력도 있다. 그들은 시시비비로 고위층을 대한다.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나무라야 하는데 잘하던 못하던 무조건 전부 냉소주의다.
대한민국 현 사회에서는 잘하면 기쁘고 칭찬해야 하고 못하면 슬프고, 공격을 하면서 과감하게 비판을 해야 하나 그러하지 않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하는 분들이시여! 두 손을 앞가슴에 대고 국민을 위한 냉소세력인가? 입신출세를 위한 냉소인가를 반성해야 한다.
국민 모두 비판은 역사를 밀고 냉소는 발목을 잡는다는 말을 인식하면서 무조건 발목 잡지 않는 시대가 요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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