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말은 너무 가벼워도, 무거워도 안 된다
[월요논단] 말은 너무 가벼워도, 무거워도 안 된다
  • 임명섭 논설고문
  • 승인 2015.04.12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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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식인의 말하기노트를 보면 따가운 충고의 글들이 많이 기록돼 있다.
그 속에 이런 글이 있다.
“말은 너무 가벼워도,무거워도 안 된다.”고 따끔한 충고를 했다. 때문에 진실이 아니면 말하지 않아야 하고 바르지 못하면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하고 비난과 칭찬도 경계해야 한다. 말을 삼가지 않으면 재앙을 부르게 된다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여야 한다. 옛날 중국 한나라 때 양운이라는 사람은 ‘앙천부부(仰天附缶)’라는 시 때문에 허리가 잘려 죽임을 당한 적이 있다.
또 서순이라는 사람은 장창에게 ‘오일경조(五日京兆, 벼슬살이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뜻)’라고 말했다가 시체가 저잣거리에 내걸리는 형벌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입을 잘못 놀려 재앙을 당했으니 겉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말만 조심해서는 안 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도 반드시 앞을 생각하고 뒤를 살펴보며 아무리 등 뒤에서 할 말이라고 해도 또한 얼굴을 마주 보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입 밖으로 꺼낼 말이 정말 피해야 할 말이라면 끝내 입을 다물어야 한다.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간다고 했다. 그러므로 만 가지의 말이 만 번 다 옳다고 해도, ‘가어(家語)’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은 법이다. 한 것보다 못한 말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말 한 마디로 천량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 진실이 약이 될 때도 많다.
말을 아껴야 할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소위 거물 정치인이 불쑥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수가 부족하다.”면서 “400명은 돼야 한다.”고 말을 던져 파문이 일었다. 국회의원 정수를 현재 300명에서 대폭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 제1야당의 현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 인준을 앞두고 여론조사에 맡기자고 하더니 이번에는 국회의원 정수를 지금보다 100명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그의 발언이 논란을 빚자 다음날 “그냥 퍼포먼스로 장난스럽게 말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단순한 해프닝으로 비치지는 않았다. 이쯤 되면 문재인 야당 대표에게 정치는 장난 밖에 안 되느냐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이런 말실수가 쌓여간다면 제1야당 대표로서의 자질에 대한 국민의 의심은 깊어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설득력 있는 근거도 없이 의원 정수를 100명이나 늘리자고 한 것은 그런 의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문 대표가 의원 정수 증가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보다 인구수 대비 국회의원 비율이 낮아 국민의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OECD 회원국의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는 평균 9만 명인 반면 우리나라는 16만 명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가 우리보다 많은 국가도 있다.미국은 72만 명, 일본이 27만 명, 멕시코 22만 명이며 호주는 우리와 비슷한 15만 명이다. 이들 국가의 정치가 후진적이라거나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이 낮다고 단정할 수 없다.
결국 국회의원수를 어떻게 정하느냐는 개별 국가의 자체적 판단의 문제다. 문 대표의 논리는 정치권의 ‘제 밥그릇 챙기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제1야당의 대표이며 지난 대선에서 1469만표를 얻은 차기 대선 주자 1순위의 그가 이런 무책임한 발언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문 대표는 우리나라 인구수 대비 의원 비율이 낮고 정수를 늘려야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으며 여성 30% 비례대표 보장도 가능해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얘기는 야당 내 공식 논의 후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당론으로 들고 나선 것인지,국민의 고통을 알고나 말 했는지 귀를 의심케 했다.
지금은 공무원연금 개혁 등 국가적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갈 지를 고심해야 할 때에 뜬금없이 국회의원 정수 문제를 꺼내들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서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이는 대신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늘리자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3년 만에 입장이 바뀐 사연도 궁금하다. 우리 정치사에는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싸고 ‘검은돈’이 오가고 줄세우기가 난무했던 암울한 장면들이 기록돼 있다.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면서 지역구 의석은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 역시 궁색하다.
지역구 의원들의 환심을 사 국회에서 ‘증원론’을 관철시키려는 꼼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 대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선거구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을 틈타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허구한 날 당리당략 이권 싸움판에 국회의원 숫자를 더 늘려 놓으면 도대체 무슨 난리를 터트리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정치 불신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의원들은 연 보수 2억 원과 특혜가 200가지를 넘을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의원 세비를 20%가량 삭감하고 특권을 내려놓야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 수를 늘리겠다는 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증원론을 펴기에 앞서 무엇보다 고비용, 저효율 국회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만들지 일류 국회로 자리매김하려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래서 ‘말은 너무 가벼워도,무거워도 안 된다’는 옛 얘기가 가슴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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