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 日 時 論]국민들이 부끄러워 할 정보기관 수장의 처신
[忠 日 時 論]국민들이 부끄러워 할 정보기관 수장의 처신
  • 강재규 부국장
  • 승인 2008.01.17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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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위원회와 외교통일안보분과위원회 앞으로 한 통의 팩스가 날아왔다. 대한민국 검찰이 보낸 것이었는데, 내용인즉슨 김만복 현 국정원장이 지난 대선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북한을 방문해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의 대화록을 유출했다고 하여 물의를 빚어 사의를 표명했다고 하니 그 내용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검찰이 김 원장의 방북 당시 대화록을 보내줄 것을 요청한 것은 김 원장에 대한 사법처리를 위한 사실상의 법리 검토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가 “진행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없고, 면담록을 입수해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한 뒤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공식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하니 김 원장을 언제 어떻게 수사를 시작해 사법처리하게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이 사건은 김 원장의 단순한 국가기밀 유출행위 뿐만 아니라 문건에 ‘국가기밀’ 등의 비밀 등급을 부여하지 않은 점 등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본인은 사의를 표명했음에도 청와대가 “사표 수리 여부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위해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즉각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제식구 감싸기에 나선 인상을 주는 것은 임기만료를 얼마 앞둔 현 정부를 더 욕하게 만들 수도 있다.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 수장인 국정원장의 어이없는 행각과 그릇된 처신은 비단 개인의 형사처벌 문제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처음 이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만 해도 김 원장은 신형 ‘북풍공작설’로 시달릴 수도 있었다. 문제가 표면화하자 국정원은 처음에 “김 원장은 지난 12월 18일 하루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기간(10.2~4)中 평양 중앙식물원에 기념 식수한 소나무의 표지석을 설치했다”며 “일부 언론에서 국정원장이 동(同)방북기간 중 북측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방한 문제를 협의했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김 원장이 대선 전날 소나무 표지석 설치 만을 위해 북을 다녀왔다는 국정원 측의 해명이 뭔가 어설퍼 보이자 그는 직접 김양건 부장과의 대화록을 준비한 것으로 일단은 추측된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남을 협의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국정원 측에서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대선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정보책임자가 이 같은 협의를 위해 방북했을 것이라는 것도 썩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 모양새다.
한 켠에서는 김영남 상임위원장 방남 문제보다 현실적인 의제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우선 6자회담과 ‘3자 또는 4자 정상 종전선언’ 관련 사안에 무게를 두는 쪽도 있다. 이 사안은 미국, 중국 등이 관련된 복잡한 사안이고 김 원장 방북 당시가 연내 북핵시설 불능화와 신고, 이에 상응하는 테러지원 명단 삭제 문제 등이 6자회담 참가국 간에 긴박하게 논의되고 있던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참여정부 외교안보 라인은 노 대통령 임기 내라도 ‘3자 또는 4자 정상 종전선언’을 추진하려는 의욕을 강하게 표명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6자회담 상황을 분석한 기초 위에 종전선언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오갔을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또 하나의 해석은 김 원장의 방북 시점이 대선 하루 전인 만큼 대선 이후의 정국에서 남북관계의 전망을 모색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의 우세가 드러난 상황에서 정권 이양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흐름을 이어가는 방안에 대해 깊숙한 논의가 오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북측의 통일전선부와 남측의 국정원은 남북관계의 기본축 역할을 담당해왔고 2차 남북정상회담과 10·4선언도 결국 이 라인이 가동돼 거둔 결실인 만큼 이후 10·4선언의 이행 문제에 대해서 협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김 원장의 개인적 보신을 위한 ‘보험들기’일 공산도 없지 않다. 이미 대선 판세가 굳어진 마당에 북한과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실오라기라도 걸어두려는 욕심이었을 수 있다. 사실이라면 참으로 어이없는 행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법처리 여부를 떠나 고위공직자 그것도 ‘음지에서 양지를 향해 충성을 다하는’ 정보기관 최고 수장의 부끄러운 처신에 국민들이 더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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