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 한정된 시각에서 벗어나야한다
[목요논단] 한정된 시각에서 벗어나야한다
  • 박창원 교수 충남도립대 인테리어패션디자인과
  • 승인 2016.08.10 1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속한 대학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최근 들어 많이 듣는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해 위기에 빠진 대학교에 관한 기사들이 많이 보도되다 보니, 우리 대학의 이해당사자들의 우려 역시 많아지기 때문이리라. 전국의 대학교가 위기이다. 그러다보니 위기를 탈출할 해법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해법이 필요하다면 역으로 그 대학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문제의 주변부까지 전체적으로 조망한 뒤에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폐교를 주장하기도 하고, 도의원들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필요한 학과들을 신설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해관계가 있는 공무원들과 외부 용역 해결자들은 그들 나름의 수준에서 몇 개 학과의 폐과와 경쟁력이 있는 학과 신설을 대안으로 세웠고 요구했다. 모두 다 나름대로 그 시야 안에서 해법을 찾았다.
영화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를 오늘의 그로 만들었던 영화 ‘죠스’는 제작 과정에서 수백만 달러를 쏟아 제작한 인공 상어가 매번 오작동하며 말썽을 부렸다. 인공 상어의 외향 역시 바닷물에 불어 흐물흐물하게 되어 괴물 상어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랜 동안 골머리를 앓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문제에 집중하기 보다는 더 큰 시각으로 문제를 보기로 했다.
그러자 새로운 차원의 해답이 보였는데 그것은 문젯거리인 상어를 영화 관객의 시야에서 아예 사라지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상어를 꼭 영화 스크린 내에 등장시켜야 할까? 시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실존은 아니다. 생각을 전환하자, 시각적인 상어는 없어졌다. 음향을 중점적으로, 요동치는 물살과 뱃머사리, 공포에 빠진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교차편집으로 극대화 시키자, 상어는 나오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렇게 스티븐 스필버그는 '상어가 나오지 않는' 상어 영화를 만들었다. 시각적 공포보다 암시적 공포가 더욱 강렬하게 관객에게 다가왔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평범한 공포영화를 당시 최고의 영화로 성공시켰고 북미 흥행 1억 달러 돌파라는 당시 역대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쓸모없는 상어 장치가 스필버그에게는 신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언제나 문제 속에서 살고 있다. 한시도 문제가 없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에 파묻혀 살다보면 인생의 즐거움이나 재미, 행복, 인권, 삶의 의미 같은 문제는 근원적으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저 문제 해결의 좁은 시야 속에서 그에 대한 조그마한 답변만을 얻을 뿐이다. 그 해답은 임시적이며 우리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답변일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결과가 더 초기의 문제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종교의 차원은 항상 초월적 자세를 취한다. 문제를 넘어서 더 큰 해답을 얻기 위해서이다.
한 영국의 방송사가 1회 분량의 시트콤만을 찍어 시청자에게 평가 조사를 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평가 내용은 매우 참담했다. 내용은 따분하고, 공감할 수 없고, 혐오감마저 든다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방송사의 선택은 이 시트콤의 추가 제작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이미 만든 내용만을 방영을 했다. 이때 한 방송 책임자가 이 시트콤의 독창적인 유머에 반해 버렸다. 그는 심야 편성 및 특집 책임자였다. 그는 이례적인 4회분을 제작을 지시했는데 그 결과는 엄청났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시트콤 『사인펠드』가 매년 약 2억 달러를 방송국에 안겨 주는 역대 최고의 TV 시리즈로 성공했다. 이렇듯 문제가 발생할 때 두려움에 빠져 안전해 보이는 길을 선택한다면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볼 수 없다. 나쁜 소식이나 부정적 반응, 두려움을 뒤로하고 내딛는 한 걸음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 준다.
최근 우리에게 지금 당장 급한 문제가 발생했다. 사드의 문제이다. 이 문제 역시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을 때 그 해답이 한정되어 버린다. 이렇게 한정된 문제인식과 문제해결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들어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시야를 집중하는 것은 마약처럼 우리를 그 속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늪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해결점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의 해결 능력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들의 모든 시야를 좁게만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판을 짜나가는 세력들이 있다. 국민들의 시야를 그들의 좁은 틀 속에 갇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문제에 집중하게 하고 공포를 가미한 이후에 국민들을 심리적 감옥에 가둔다. 그들은 한 가지 해결점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어찌 그 해결책이 한 가지밖에 없겠는가? 여러 해결책이 있음에도 그런 과정을 놔두고 국민의 시각을 좁혀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집단들의 속셈은 어디에 있을지 궁금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