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정에 띵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세살배기 딸 아이가 ‘아빠~’ 하면서 환하게 웃으며 문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어서오세요~’ 하면서 밝은 소리로 문을 열어주자, 아빠는 아내의 볼에 뽀뽀를 했다. 그 사이에 사랑하는 딸은 아빠에게로 다가갔고, 아빠는 딸을 번쩍 들어 안아주었다. 그런데 아빠를 보고 ‘아빠’ 하며 방긋 웃어야 할 딸의 시선이 아래를 처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빠가 왜 그런가 해서 딸 아이의 시선이 향한 곳을 쳐다보니 그곳에는 아빠의 외투 주머니가 있었고, 그 주머니에는 바로 아빠의 스마트폰이 있었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빠가 아니라 아빠의 스마트폰이었던 것이다. 딸 아이의 내면에는 아빠를 보고싶은 갈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빠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고 싶은 갈망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아빠가 오셔서 기쁜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이 오셔서 기뻤던 것이다.
오늘날의 대중문화에 무차별로 노출되며 우리 자녀들의 갈망이 엉뚱한 곳으로 자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아무말 없이 잘 따라나오더니, 어느 순간부터 ‘도대체 우리 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모와 담을 쌓고 다른 갈망을 향하여 달려가는 모습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 마음에 있는 갈망을 보아야 한다. 가슴 속에 타오르는 욕구가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 지금 내 안의 갈망은 어떻한가? 또 내 자녀의 갈망은 어떠한가? 이제는 갈망을 관리해야 한다.
[대전도안교회 양형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