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 이성의 사적 사용과 공적 사용
[목요논단] 이성의 사적 사용과 공적 사용
  • 박창원 교수 충남도립대 인테리어패션디자인과
  • 승인 2016.11.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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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성의 공적 사용의 중요성 말한다. 이성의 사적 사용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을 처리하는 것이다. 칸트는 그것을 ‘기계의 부속품처럼’이라고 묘사했다. 반면 이성의 공적 사용은 자신이 어느 직책에 있든 그 명령이 부당하다면 공적 이성을 가진 자로서 전체 대중에게 용기 있게 발언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박응천, 박관천과 같은 분들이 공적 이성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지금 국민들은 이성의 공적 사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국민들은 권력자에 맞서 용기 있게 민주공화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민들이 그동안 유보해 왔던 자신들의 국민된 권리를 되찾고 더 나아가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한 진리의 행진을 하고 있다. 국민 이성의 공적 사용이다. 이들을 칸트는 성숙한 존재들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반면 최고의 권력자들은 이러한 성숙의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 검찰, 공무원, 경찰,  친박 국회의원 등은 자신의 조직에 머물러 그들의 범죄를 방조했다. 검찰은 100만 국민의 민심을 보고서야 움직였으며,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장관들도 국민의 민심을 보고서야 낮은 자세를 취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등의 범죄에 대해 유언비어라며 국민과 여론을 협박했다.
공금의 사적사용을 계속해온 자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은 마른 수건에 물기를 짜듯 거둬들인 국민의 공적 세금을 소수의 인간들이 사적으로 착복해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 검찰이 밝힌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의 범죄 혐의는 ‘권력을 활용한 사익의 추구’다.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에서 돈을 뜯어 만든 재단을 측근들이 사금고처럼 활용하려 했던 점, 정부 혹은 기업 예산에 측근의 사업을 얹어 사적 이익을 추구한 일등으로 대통령도 최순실 일당과 함께 피의자 신세가 된 상태이다.
이러한 사적 이익과 범죄 행위는 이미 오래 전 시작된 일이다. 육영재단 설립에 이미 범죄의 시작은 있어왔다. 육영수 여사가 1000만원을 내고 기업과 정부·지방자치단체가 3억원 가까운 돈을 내 만들어졌다. 당시 육영수 여사가 낸 재단 설립은 또 다른 기업과 정부권력 간의 ‘정경유착의 고리’로 발전했다.
박근혜 역시 구국선교회라는 명목으로 고 육영수 여사가 했던 방식으로 공적 행사에 사적인 기업 자금을 끌어들인다. 자신의 어머니와 똑 같은 방식으로 돈을 끌어 모은 것이다. 이번에는 미르와 K스포츠라는 또 다른 재단을 만들어 그것을 빼먹으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기업이 그저 권력기관에 돈을 내지는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그 모두가 뇌물인 것이다. 이들이 돈을 낸 뒤에 재벌들이 얻은 혜택을 살피면 그것은 명백하다. 기브앤테이크가 명확하다. 삼성만 해도 100억 정도 출연했지만 수천억원의 이익을 보지 않았는가?
지난 번 ‘그것이알고싶다’라는 프로에서 영남대학교와 육영재단에서 그들이 빼돌린 재산도 역시 어마어마하다는 보도를 통해 그들의 재산증식에 대한 의문점이 밝혀졌다. 경주 최부자의 기부 등으로 자산이 많았던 영남대학교는 88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대로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태민 일당에 의해 영남대 불법자금편취, 공금횡령, 부정입학, 판공비 사적용도 사용비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전횡에 재정이 거덜난다. 그들에게 피가 빨리면 빈사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증거이다.
이 모두가 범죄의 평행이론으로 설명될만한 사안이다. 육영수, 박근혜, 최태민 등이 결국 공적재단을 만들고 그곳에 기업의 사적 자금을 모집한 후 그것을 자신들의 사적 소유로 이전하는 방식의 범죄를 반복한 것으로 판단된다.
공적 정당인 새누리당의 친박 국회의원들의 최순실 일당 감싸기와 국회 무력화라는 사적이성의 사용은 스스로 권력기관이라는 자부심을 망각한 처사이다. 약한 자들에게는 강한 그들이 삼권분립의 한 축인 국회의 자존심을 망가트린 것이다.  검찰, 새누리당 의원들, 부정을 알고 있으면서 눈감았던 공무원들 모두가 사적 이성에 자신들을 복속시킨 사람들이다. 인간의 실존적 주체성은 찾아볼 수 없다.
칸트는 이러한 공적 이성의 사용에 의한 성숙의 단계로 인류가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국민은 정의를 향한 공적 이성의 사용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대통령 지지율 5%와 부정적 지지율 90% 이상이라는 의사표현으로 준엄한 신판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최태민에 빠져 있는 미망의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 의원들, 일부 검찰, 일부 공무원들의 미성숙에 비해 성숙한 국민들이란 대조에서 우리 국민들의 위대성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미래는 밝다.

 

[박창원 교수 충남도립대 인테리어패션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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