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병든 보수 치유없이 민심 움직일 수 없다
[충남시론] 병든 보수 치유없이 민심 움직일 수 없다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7.02.08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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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횃불이 또 다시 사그러 들어 아쉽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귀국하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얼마든지 몸을 불사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유엔 사무총장으로 10년간 국제 무대에서 쌓은 경륜과 식견을 국내 정치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본인의 정치 경험 부족 탓일까?
더 근본적 원인은 지금 박근혜 정권에 실망하고 분노한 민심을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는 정치 지형 자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 전 총장은 이런 국내 정치의 흐름을 돌릴만한 비상한 결단과 지도자 자질을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반 전 총장 그는 유엔 사무총장에서 떠나 귀국 후 지옥 같은 3주를 보냈을 것이다.

대선 출마 선언도 하지 못하고 사퇴한 격이 됐으니 말이다. 선거 전략 미비, 정치 참모 부재, 달라진 정치 지형이 그의 발목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을 하며 쌓은 국제적 경험과 네트워크가 그냥 사라져 아쉬워하는 국민들이 많은 것은 분명했다.

우리가 배출하고 충청의 횃불로 보기 드문 인재인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든 헌신하겠다”는 불출마 선언과 함께 한 그의 마지막 말이 꼭 실현됐으면 한다.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반 전 총장은 대통령 선거 불출마의 전격 선언함에 따라 대선 구도도 요동치고 있다.특히 여당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이 됐다.

반 전 총장이 이처럼 최단 기간에 퇴진하게 된 것은 본인의 구상이 전부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국내에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고 외교관 공직 경험이 전부인 그는 출발부터 다른 사람의 등에 올라타고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러는 사이 20%를 넘나들던 지지율은 10대% 초반까지 급락했다. 게다가 정치권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도 실망했다. 특히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우리 정치권도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였다.

정치판을 새롭게 개편하려던 그의 시도가 좌절됐다 해도 정치권 개혁 노력은 중단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절박한 위기 속에서 정치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태도가 실망스러웠고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성 정치권으로부터 배척당했다는 얘기다.

한편 반 전 총장의 판단도 그릇 됐다는 평도 있다. 어느 정당이든 모셔가 주기만 바라는 듯한 이른바 꽃가마 타기 전략을 엿보이기도 했는데 냉엄한 정치판에서 보자면 허황돼 보이는 모습이다.
반 전 총장은 설을 전후해 여야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는 자리에서도 정책과 비전을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정립하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겉돌기만 했다.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극복하기에는 결기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선 주자 한 명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이다. 책임은 반 전 총장에게 있다.
큰 각오도 없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면 무책임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비정치인으로서 기성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어줄 것이란 기대가 무너진 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순수하게 그를 믿고 지지한 수많은 이들이 겪게 될 좌절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를 통해 헌신하겠다는 꿈은 무산됐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 나라를 위해 기여할 여지는 많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기를 바라고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이제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을 계기로 보수 진영은 보수 진영대로 진보 진영은 진보 진영대로 정책·비전 경쟁을 통해 조속히 후보를 결정해 국민의 선택에 도움을 줘야 한다.

그리고 유리한 쪽으로만 발을 걸치는 기회주의적 모습도 끝내야 한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안보 이슈나 망국적 지역감정을 이용해 표를 구하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범여권은 오로지 병든 보수를 치유하고 통합할 건강한 보수의 비전으로 승부를 걸 때 민심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충남일보 임명섭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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