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알쓸신잡’: 사피오섹슈얼들의 쓸쓸한 해방구
[김창현 칼럼] ‘알쓸신잡’: 사피오섹슈얼들의 쓸쓸한 해방구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7.06.19 14:3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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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사피오섹슈얼들의 쓸쓸한 해방구

김창현 (서울대 지리학과 박사)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모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제작: 나영석)이 대세다. 요즘 어디에도 '알쓸신잡' 이야기가 안 나오는 자리는 드문 것 같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재야에 엄청난 숨은 팬들을 가지고 있는 유시민 작가, 김영하 작가, 대한민국 대표적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 작가, 예능과 프로듀싱 부문에서 모두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작곡가 유희열, 그리고 대중에게도 친근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출연했다는 점만으로도 대중의 관심을 흠뻑 사로 잡을만 하다.

이 방송의 매력은 소위 '사피오섹슈얼'들의 취향을 저격했다는 데 있다. 사피오섹슈얼이란 흔히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라고 하는 개념과도 비슷한 개념으로서 지적인 사람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성향을 의미한다. TV 프로그램이 때로는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고, 또 한편으로는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과 수다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알쓸신잡'은 어떤 사람들의 어떤 목마름을 해갈해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알쓸신잡’의 인기는 첫 방송 순간최고시청률 7.5%라는 기록적인 수치로도 확인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예능인 만큼, 꼬집는 목소리도 피해갈 수는 없어 보인다. 그 중에서 좀 과하다고 생각되는 반론들도 있고, 또 곰곰이 생각해야 할 내용들도 있다. 먼저 과하다고 생각하는 비판은 "왜 아재들만 있냐?"는 반론이다. 아재라는 말에는 '기성세대'와 '남성'이라는 두 가지 혐오 키워드가 살며시 들어있다. 그간 기성세대 남성이 얼마나 발언권과 주도권을 독점해왔으면 이런 비판이 나올까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프로그램의 핵심을 꼬집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알쓸신잡' 안의 캐릭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첫방에서 유시민 작가는 혼자 대화를 주도하는 것처럼 방송이 되어 빈축을 샀다. 예를 들어 "통영은 왜 계속 많은 예술가를 배출하지 못했을까?"라는 김영하의 질문에 대해서 유시민은 상당히 장황한 예술론을 늘어놓았다. 그 중 서울-수도권으로 예술가가 집중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는 예술과 지역이라는 주제에 대한 견해 치고는 지나치게 나이브해 보였다. 예를 들면 미국의 아이오와에서 많은 훌륭한 문인이 배출된 이유는 사방이 옥수수 밭이라서 글 쓸 것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다는 설도 있다. 지역과 예술의 관계가 유시민의 표현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예술과 지역의 관계는 어차피 견해의 영역이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오류에 대한 지적은 좀 아프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유희열이 용감하게 “여순사건은 왜 일어났어요?”라고 묻자 김영하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뉘앙스로 대답했다. 이것은 여순사건에 대한 엄청난 실례가 되는 설명이다. 외국인이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냐"고 물어볼 때, "한국이 미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라고 누군가 대답한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일까? 만약, 작가 개인이 여순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가볍게 말했다 하더라도, 제작진은 여순사건에 대한 합의된 역사적 사실을 좀 더 친절하게 짚어줄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아무도 사실확인을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나 싶다.

"알아 두면 쓸모가 없다"는 프로그램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알쓸신잡’은 예능이다. 그리고 예능은 예능일 뿐이다. 예능을 통해서 피타고라스의 정의를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예능은 이제 지식에 목말라하는 대중의 감수성까지 건드릴만큼이나 발전했다. 그것은 TV 예능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가진 담론의 빈곤함을 보여준다. 프랑스 사람들은 저녁 식사 때 화제를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도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대화거리를 예능에서 찾는다. 왜 우리는 이렇게 담론이 빈곤한 시대에 살게 되었는가? 필자는 이것이 '알쓸신잡'을 보면서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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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yl 2017-06-30 11:58:07
했는데..? 여순사건 정의와 나름의 정리 했는데? 농담조로 김영하가 말한다음에?
그리고 아이오와는 아이오와 이고 한국사정은 한국사정이지 따로따로 설명하면 나이브한거라는 논리는 왜나온건지 모르겠다..통상적인 이유를 댔다는 것 만으로 지나치게 나이브해보인다고 하면 곤란하다. 핵심을 꼬집은거고 핵심에 따른 상세한 설명을 한거라고 생각한다.
뭐 못잡아먹어 안달이야

dltks 2017-06-21 16:56:05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혁명적인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비겁하게 침묵하지 말고 당당하게 반대나 찬성을 표시하고 기자들도 실상을 보도하라! 하나의 이론이 완전하면 다른 이론이 공존할 수 없는데 고전과 현대의 물리학이 상호보완하며 공존하는 것은 모두 흠결이 있다는 증거다. 가상의 수학으로 현실을 기술하면 오류가 발생하므로 이 책에는 수학이 없다.

참된 과학이론은 우주의 운행은 물론 탄생까지 모두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