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살아남는 자와 강한 자
[김창현 칼럼] 살아남는 자와 강한 자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7.08.28 17: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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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2007년 인기리에 반영되었던 ‘하얀 거탑’의 명대사이다.
주인공의 장인으로 등장한 민충식(정한용 분)이 자신의 사위인 장준혁 교수(김명민 분)에게 주는 격언이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 대사는 여러가지 변종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하얀 거탑’ 뿐만 아니라, 영화 ‘세기말’(1999)에서도 “살아남은 놈이 강한기야, 무슨 짓을 하든 살아남는 놈이 강한 기라”라는 대사가 등장하고, ‘야수’(2006)에서는 “이기는 게 정의야, 약해 빠진 놈들이나 흥분하고 날뛰다가 지는 법이야”라는 유사한 버전도 있다.

찰스 다윈은 생존에 대해 조금 다른 뉘앙스의 명언을 남겼다. “살아 남는 종(種)은 가장 강하거나 똑똑한 종이 아니다. 변화하는 종이다” 여기에서 다윈은 ‘생존의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기서 생존의 단위는 개체가 아니라 종이다. 단순히 자기 혼자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다윈의 주장이다.
다윈에 따르면, 생존의 필요조건은 변화가능성이다. 그러나 변화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가능성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러나 필요조건조차 지키지 못하는 종들은 분명 멸종한다.

예를 들어, 공룡의 멸종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확실하다. 하나는 어떤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룡이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무려 2억년이나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들은 백악기 3기 대멸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공룡입장에서 이런 평가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겨우 100만 년 전후 역사를 가진 인간이 2억 년이나 지구상에서 번식했던 우리를 멸종의 아이콘으로 보다니!”
어쩌면, 공룡은 ‘멸종의 아이콘’이 아니라 ‘생존의 아이콘’일지도 모른다. 개체의 생명이 기껏해야 100년 정도인 인류가 2억 년 동안 문명을 유지하며 존속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공룡의 멸종은 외인(外因) 때문이었으리라. 운석충돌, 화산폭발, 기후변화가 주범으로 꼽히는 외인이다. 그러나 인류가 어떤 이유로든 지구상에서 2억 년 생존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외인(外因)보다는 내인(內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가능한 내인 중 하나로 꼽히는 핵무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이 21세기 대한민국이다.
‘하얀 거탑’의 장준혁(김명민 분)은 “나 장준혁이야”라고 할 정도로 강하고 똑똑했지만, 담낭암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살아 남는 자가 강하다”는 명제에 비춰보면, 그의 강함과 똑똑함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장준혁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똑똑했지만, 결국 자신의 눈을 파낸 오이디푸스왕과도 닮아 있다.

눈을 돌려 다시 한반도를 보자. 우리의 건강한 삶터가 비극의 현장이 되도록 놔두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팽팽해질수록, ‘강함’과 ‘똑똑함’에 기대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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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우 2017-08-29 11:49:53
강함과 똑똑함에 기대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는 갓이 우리의 숙제다
마음에 와 닿는 말이네요
좋은 글 많이 돌려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