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막강한 권력자를 감시할 감시자는 누구?
[충남시론] 막강한 권력자를 감시할 감시자는 누구?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7.09.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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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는 조선시대 왕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을 숨어서 순행하며 민정을 살핀 관직이다. 암행어사란 용어가 처음 선 보인 것은 중종 4년 때 부터 시행됐다. 그 후 400년간 수많은 암행어사가 임명되어 지방 수령, 방백들의 부정 행위를 방지하다가 고종 29년에 전라도 암행어사로 임명된 이면상을 마지막으로 없어졌다.
당시 암행어사는 국왕이 단독으로 선택하여 임명했는데 영조 11년부터 암행어사 추천정책이 실현되었고 이때부터 국왕이 극비로 단독 임명하는 경우와 대신의 천거로 임명하는 방법으로 병행했다.

국왕은 암행어사의 암행조건, 관할구역을 쓴 임명장을 밀봉하여 마패와 유척과 함께 건네줬다. 암행어사는 임지에 도착한 후 또는 서울을 벗어난 후 암행 사실이 사전누설되지 않도록 철저히 방지했다.
암행어사의 주된 임무는 조선 초기에는 지방 수령의 임무인 7사(농사와 양잠을 성하게 하고 호구를 늘리며 학교를 일으키고, 군정을 닦고, 부역을 고르게 하고, 소송을 간명하게 하며 간활을 그치게 할 것을 제대로 거행하고 있는지의 여부와 실적 허위보고 유무 등을 조사했다.

부정 등의 증거가 명백한 자는 가두고 신문할 수 있도록 어사의 권한을 강력하게 규정했다. 암행어사제도가 발전하면서 후기에는 3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 상황과 관리들의 근무 실적 조작 등 항목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여 살피게 했다.
이런 과정에서 암행어사의 권한을 남용하거나 직무를 게을리 하는 것은 엄격하게 경계했다. 암행어사는 신분을 감추고 변장하여 몰래 백성들의 동태를 살피고 정보를 수집했다.
어사가 출도할 때는 부하 또는 역졸을 지휘하여 “암행어사 출도”라는 소리를 치게 하기도 했다. 암행어사가 소지한 마패는 역마를 빌리는 증표로 마패에 조각된 말의 수량 만큼 역마를 쓸 수 있었다.

이런 조선시대에 가름하는 막강한 힘이 실린 매머드급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창설 방안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의 권력 눈치보기 수사를 차단하겠다며 내세운 공수처 신설 안이 공약 이행차원에서 제안했지만 권한이 너무나 막강해 그야말로 암행어사에 버금가는 수퍼권력이 탄생될 것 같다.
공수처 인력만 해도 공수처장과 차장 외에 검사 30∼50명, 수사관 50∼70명을 두도록 했다. 줄잡아 122명에 달하는 조직이여 ‘권력 위 권력’ 옥상옥의 수사기관이 될것 같다.

전국 최대 검찰 조직인 서울중앙지검의 부패범죄 등 특별수사를 맡는 3차장 산하 검사 60명과 비슷한 규모다. 게다가 공수처는 수사·기소·공소유지권을 모두 갖고 경찰·검찰 수사가 겹칠 때는 공수처가 우선 수사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수사 대상으로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대법관·헌법재판관, 광역지방단체장과 교육감 등 주요 헌법기관장 등이 포함됐다. 정무직 공무원과 고위공무원단,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고위직 경찰, 장성급 장교 등 이다.
그리고 현직이 아니어도 퇴임 후 3년 미만의 고위 공직자는 범죄 혐의가 있을 경우 수사를 받도록 했다. 또 고위 공직자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까지 수사 대상 범죄도 폭넓게 정하기도 했다.

특히 전형적 부패범죄인 뇌물수수, 알선수재, 정치자금 부정수수 외에도 공갈, 강요, 직권남용, 직무유기, 선거 관여, 국정원의 정치 관여, 비밀 누설 등 고위 공직 업무 전반과 관련한 범죄가 처벌 대상이 됐다.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 개혁위원회는 이같은 엄격한 조직의 공수처 설치 안을 마련해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공수처장의 임기는 3년 단임제로 추천위가 2명을 추천하여 대통령이 한 명을 낙점하도록 했다.

공수처 신설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당시 논의된 사안이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찬반 논쟁만 진행되면서 검찰 개혁은 말만 무성했을 뿐 실질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했다.
또 하나의 거대 권력을 만드는 것이 개혁인가? 공무원의 비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공무원의 복종을 잡으려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대단한 위세를 가지게 될 판이다.
권고안이 수용된다면 공수처는 입법·행정·사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초헌법적 권력기관이 되어 비정상적인 상시사찰기구로 전락해 결국 대한민국의 권력 문제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법무부는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눈치를 보지 말고,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권력 감시 기구를 만들 수 있도록 냉정한 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뽑으면 공수처는 또 다른 대통령 하청 기관이 될지도 모른다.
권고안은 법무부와 국회 상임위원회, 본회의를 거쳐야 한다. 확정 전까지 반대파의 의견을 경청하며 세밀하게 다듬어야 한다. 문제는 막강한 권력자인 암행어사에 버금가는 공수처를 감시할 감시자는 누가 될까?[충남일보 임명섭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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