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흰긴수염고래와 북극곰, 그리고 상어
[김창현 칼럼] 흰긴수염고래와 북극곰, 그리고 상어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7.09.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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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긴수염고래(일명 대왕고래)는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동물’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육중한 몸집을 자랑한다. 몸 길이는 평균 25-30m이며, 몸무게는 150톤에 달한다. 중생대 공룡을 비롯하여 흰긴수염고래보다 더 큰 생명체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흰긴수염고래는 상어와 돌고래 등 덩치 큰 녀석을 좋아할 것 같지만, 의외로 크릴새우를 좋아한다. 그러나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려면 하루 6.5톤의 크릴새우를 먹어치워야 한다.
TV 동물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보이는 흰긴수염고래의 자태는 우아하다 못해 경이롭다. 바다에서 무려 40km 의 속도로 이동하며, 수만 마리의 크릴새우 무리를 거뜬히 먹는다. 아마도 바다에 살아있는 생물 중 흰긴수염고래를 당해낼 동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자연계의 천하무적, 흰긴수염고래는 대형선박에 부딪쳐 죽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히 미국 북캘리포니아주에서는 21m에 달하는 새끼 흰긴수염고래가 선박에 치여 인근 해안으로 떠내려오는 사건도 있었다.
지구상에 살아있는 그 어떤 천적도 당할 수 없는 흰긴수염고래는 점점 늘어나는 LA 항을 오가는 대형선박들에 의하여 위협받고 있다. 고래사냥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흰긴수염고래는 지구상에 만여 마리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큰 것보다 작은 것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엄청난 인간의 포획에 의해 바다생물의 개체수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또한 바다생물들은 자신의 크기를 줄여서 인간의 포획에 응대한다. 몸집이 클수록 인간의 먹잇감이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흰긴수염고래처럼 대형선박과 충돌할 위험도 커진다. 흰긴수염고래들은 신호등도 없는 바다를 오늘도 위험하게 헤엄치고 있다.

한편, 기후변화에 의해서 쇄빙선 없이 수송선이 북극을 통과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로써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북극항로는 현실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 수송선은 노르웨이에서 충남 보령까지 불과 19일만에 도착하여, 전통항로의 시간을 1/3로 단축하는데 성공했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가 지중해와 홍해를 이어 유럽과 인도의 교역을 활성화한 것처럼, 북극항로의 개척은 북극시대를 열면서 한국 경제발전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북극항로가 시베리아 자원개발을 가속화시켜 인류의 에너지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북극곰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북극곰은 기후변화와 먹이부족으로 인하여 최근 20년 동안 키와 몸무게가 모두 약 10% 이상 감소했다. 콜라 모델로도 활동하여 우리에게도 친근한 북극곰은 북동항로의 개발로 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 텔레비젼에 나오는 북극곰은 점점 야위고 지쳐서, 자신의 먹잇감인 바다코끼리와 싸우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단지 지느러미가 맛있다는 이유로 지느러미가 잘린 채 다시 바닷속으로 버려졌던 상어의 신세보다는 기후변화로 서서히 개체수가 감소하는 북극곰이나, 사고사로 목숨을 잃는 흰긴수염고래가 더 나은 팔자일 지 모른다. 다행히도, 인간 중 소수는 샥스핀 금지운동을 펼치거나, 흰긴수염고래의 생존을 위해 항로를 변경하자고 주장한다.
북극곰이나 흰긴수염고래의 생존은 우리의 삶과 별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북극곰이나 흰긴수염고래의 미래는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삶은 우리와 상관 없어 보이는 것에 의해서 지배되기도 한다. 멸종해가는 동물을 보호하는 능력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보호하는 능력의 다른 표현이며, 어쩌면 이 능력은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생존기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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