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도움에 인색한 사회
[기고] 도움에 인색한 사회
  • 문진근 순경 서산경찰서 태안지구대
  • 승인 2017.10.09 16:4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달 전 서울 영등포의 한 골목길에서 음주단속을 피해 달아나던 차량이 길을 가던 30대 여성을 치고 그대로 달아났다. 사고를 당한 여성은 고통을 호소했지만 지나가던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여성은 고통 속에 발걸음을 옮기다 한 행인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에 이송됐다.

이토록 우리가 도움에 인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사회 뿌리 깊게 박혀있는 유교문화의 폐해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에 의해 내용보다 외형적 틀을 중시한 윤리의식이 지금까지 만연해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사회는 다른 사람의 눈이 없는 경우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피동적 윤리의식’이 팽배하게 되었고 어떤 일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피동의 심리가 발달해 있다. 또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금기시하고 있고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잡아 이번 뺑소니 사고와 같은 상황에서도 섣불리 도움의 선길을 건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응급상황을 보고도 선뜻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심폐소생술을 예를 들어 보자. 심폐소생술이란 정지된 심장을 대신하여 심장과 뇌에 산소가 포함된 혈액을 공급해주는 아주 중요한 응급처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심폐소생술 교육은 미국보다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사람은 3%에 불과하다.

경쟁사회에서 오는 비극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학교에 진학함과 동시에 경쟁사회에 들어선다. 이러한 경쟁은 더욱 치열한 경쟁을 낳고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은 쟁의 대상이 된다. 사적인 영역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언제부턴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경우 오히려 법적인 불이익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의식이 행배해져 있어 도움을 주고 싶어도 받게 될 불이익 때문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 의인들은 존재했다.

2001년 도쿄 신오쿠보역 지하철역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 중 선로에 떨어져 있던 취객을 구하다 숨진 고 이수현 씨, 작년 9월 원룸 건물에 불이 나자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 사람들을 대피시키다 정작 본인은 연기에 질식해 숨진 초인종 의인 고 안치범 씨 등.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위기의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알고 때로는 자신에게 손해가 오고 피해를 보더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회가 될 때 살만한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제2의 제노비스 신드롬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문진근 순경 서산경찰서 태안지구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호준 2017-10-09 19:18:33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손해나 피해를 계산하게 되는 각박한 세상인 것같지만 그래도 이수현 씨나 안치범씨 같은 의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자님이 말씀하시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처한 사람들을 보면 도와야한다는 당연한 말을 망설임 없이 즉시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