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추석 명절의 진화
[김창현 칼럼] 추석 명절의 진화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7.10.0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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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난 몇 년 동안 명절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보내왔던 것이 사실이다. 좀 과격해 보이지만, 필자는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과 사석에서 추석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추석은 농경시대의 산물이다. 농경시대에는 그 해 첫 생산물로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차례를 지내는 것이 의미가 있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10월 초 별도로 차례를 지내야 할 근거가 없다.

둘째, 명절에는 교통사고가 많이 나서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죽는다. 뿐만 아니라 교통 체증으로 인하여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10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한꺼번에 고향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셋째, 명절에는 불필요한 감정싸움이 생긴다. 혈연이라도, 서로 생활반경이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남이다. 남의 인생에 대해서 나이가 몇 살 많다는 이유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것부터가 무리수이다. 덕분에 청춘들은 귀성길이 부담스럽고, 어른들은 요즘 청춘들은 너무 약해빠졌다고 혀를 끌끌 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상처 하나씩은 안고 오는 것이 명절이다.

넷째, 한국인에게는 명절이 아니라 휴식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은 정당한 휴가를 내고 자신이 보고 싶을 때 부모님을 보러 가면 된다. 명절이란 미명 아래 전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전쟁 나가듯 고속도로로 출전해야 할 이유가 없다. 대신 우리는 찬찬히 앉아서 삶을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다섯째, 명절 증후군도 무시하기 어렵다. 요즘은 약간 풍속이 바뀌었다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명절에 나오는 엄청난 집안일은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었다. 덕분에 명절은 보통 명절이 아니라 부부싸움 기념일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번 명절을 겪으면서 몇 년 동안이나 소신으로 유지해왔던 폐지론의 소신이 흔들리게 되었다. 이번 명절은 10일이나 연속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건국이래 가장 긴 연휴였다. 명절이 길어지자 단점은 대부분 해소되고, 장점이 더 많아지는 것을 눈으로 느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교통사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명절이 길어지자 교통량이 분산되고, 상대적으로 운전자들도 휴식을 취하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명절 교통사고가 줄어든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번 추석 3일 동안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딱 한 건 발생했는데 부상자가 없었다고 한다. 불과 2016년 16건일 발생해 21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명절에 교통사고가 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반대명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더군다나 연휴가 길어지고 추석연휴 동안 고속도로 이용료가 면제되어 전국의 크고 작은 관광지에는 즐거운 비명이 연신 터져 나왔다. 다들 명절이 아닌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굳이 하나만 꼬집자면, 훗날을 대비해 모든 관광지에 화장실과 주차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파격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량진에서 컵밥을 먹으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연휴 분위기를 애써 즐기지 않는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있다. 또한 각종 시험과 자격증을 준비하고 미래를 위해 땀 흘리는 취준생(취업 준비생) 역시 명절을 보내는 마음이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월세를 내고도 손님을 받지 못하는 영세 자영업자들 역시 길어진 연휴가 달갑지만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명절이 길어지고, 고속도로 통행료가 면제되면서, 명절의 장점은 늘어나는 것을 몸소 겪으면서, 대한민국의 명절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추석 임시공휴일 지정과 통행료 면제 정책과 같은 국민 눈높이에 맞춘 정책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이 국토 곳곳을 방문해야 국토 곳곳이 아름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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