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이웃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책임
[양형주 칼럼] 이웃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책임
  • 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 승인 2017.10.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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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에서 나온 장면이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뽀뽀를 하고, 웃고 즐거워하면서 고백한다. 남자가 먼저 ‘사랑한다’(I love you)고 고백한다. 그러자 여자도 이에 ‘사랑한다’(I love you, too)고 응답한다.
여자는 남자의 깊은 사랑을 확신하고 이어서 말한다. ‘우리 그럼 결혼할까?’ 그러자 갑자기 남자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긴다.
그러자 여자가 당황하면서 ‘아니, 왜 그러냐?’고 우리 사랑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남자가 하는 말이, ‘사랑하지만, 결혼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나?’라고, ‘이제 우리는 끝’이라고 했다.

남자가 이렇게 펄떡 뛰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책임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달콤한 감정은 좋았지만, 사랑함으로 져야 할 책임은 회피하고 싶었다. 여기에 거짓 사랑의 함정이 있다.
우리는 종종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 애써 간과하고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에 따르는 책임을 감수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를 ‘사랑의 수 고’라고 한다. 우리는 마땅히 사랑에 따르는 수고를 알아야 하고 이 수고를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신약성경을 많이 저술했던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감당했던 ‘사랑의 수고’를 기억한다고 칭찬한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이웃이 누구인가? 나는 그들을 위하여 기꺼이 수고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수고한다는 것은 그들을 위하여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기꺼이 감당함을 의미한다. 진정성 있는 사랑은 기꺼이 책임지는 사랑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책임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만큼 수고가 결여된 껍데기만 남은 사랑이 넘치는 시대다. 만약 우리가 기꺼이 서로를 향해 책임감을 갖는 진정성 있는 사랑을 회복한다면 이 사회는 훨씬 신뢰할 만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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