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어처구니없는 희생, 얼마를 더 치러야 하나
[충남시론] 어처구니없는 희생, 얼마를 더 치러야 하나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8.01.31 16:2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남일보 임명섭 주필] 대형 재난 사고는 인류가 도시를 건설하고 집단 거주를 하면서 숙명처럼 따라붙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에도 크고 작은 재난 사고들이 알게 모르게 잇따랐다. 당시 실록에 따르면 모든 사고는 무책임한 윗사람의 욕심과 무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태종 14년(서기 1414년) 8월, 초대형 해상 재난 사고 발생이 조정에 전해 왔다. 당시 전라도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실은 조운선이 안행량, 즉 태안반도 앞바다를 통과하다가 침몰한 대형사고였다.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세금으로 거둔 곡식들은 조창에 모아놨다가 배로 한양으로 운송했다. 문제는 연안을 따라오는 항로를 이용하다 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에 암초와 급류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진도의 울돌목과 태안반도 앞바다가 대표적인 지점이다. 특히 안행량(태안반도)의 경우는 침몰과 난파 사고가 잦은 곳이다. 그런데도 무리한 운항으로 이곳에서 초대형 재난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그곳을 지나던 운반선들이 가라앉은 것은 조운선을 비롯 66척, 사망자 200명, 물에 빠진 곡식만도 5800석에 달했다. 이처럼 한 두척이 아닌 66척이나 가라앉은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전해오는 얘기로는 한밤중에 무리하게 운행하다 거센 바람에 암초에 부딪쳐 사고가 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망자는 조운선을 운행하던 수군들이었다. 사고는 부주의와 무관심이 빚어낸 인재였다. 7월은 바람이 심해서 배들이 운행을 회피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호조에서 이 기간 동안 한양에 곡식을 도착하도록 무리하게 지시해 위험을 무릅쓰고 조운선을 운항한 것이 화를 일으켰다.

위험한 야간 항해를 시도한 이유도 명백하다. 호조에 얘기한 8월 초라는 기한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항해를 한 것이다. 당시 조운선에는 운행 책임자인 관기 두 명이 동행했으나 해난 사고로 모두 물에 빠져 피해를 입었다.
상부의 지시를 이행하려 야간에 무리한 운항으로 강한 바람에 암초에 부딛쳐 초대형 재난 사고가 발생된 것이다. 당시에도 주의하고 조심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던 사고였다.

보고를 받은 태종은 호조에서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고 해도 수군도절제사가 대책없이 위험한 시기에 조운선을 출발시킨 것을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라며 수군도절제사를 즉시 파직하고 한양으로 역마를 타지 말고 올라오도록 엄한 벌(?)을 지시했다.
공개적으로 강력한 처벌을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죽은 수군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고 유족들의 슬픔도 없어지지 않았다. 실록처럼 최근 국내에서도 자주 발생하고 있는 대형 재난사고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책임으로 참사를 불러 일으켰다.

영흥도 낚싯배 전복,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제천 화재, 밀양 세종병원 화재, 크레인이 시내버스를 덮친 사고로 현장에서 잇따른 떼죽음 참사는 모두가 무책임이 공통점이다.
취약한 안전의식, 허술한 제도, 수박겉핥기식 관리·점검, 초동대처 미흡 등이 판박이다. 예고된 인재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지만 달리 표현할 말도 없다. 예방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사고도 끝내 대형참사를 만들고야 마는 안전불감증과 허술한 시스템은 엣날이나 지금이나 한국의 고질병이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동계올림픽 개최국에서 후진국형 사고가 수시로 일어나는 데 대해 외신들도 깜짝 놀랄 지경이다. 4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거셌지만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 것은 사고를 겪고도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는 ‘안전 대한민국’을 내걸고 올해 국민안전을 핵심 과제로 추진한다고 발표했지만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안전과 예방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빈틈없는 재난 대응 매뉴얼에 따라 부단한 점검과 훈련을 통해 모두가 체화하지 않으면 언제든 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도 이제는 안전불감증과 결별해야 한다.
재난 대처도 못하면서 ‘나라다운 나라’일 수 없다. 대형 참사 때마다 ‘달라진 게 뭐냐’고 개탄했다. 한탄도 이제 익숙해져 경각심도 주지 못할 지경이다. 참사가 나면 정치인들이 찾아와 위로하기도 한다.

울먹였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대형사고를 교훈 삼고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할 궁리부터 한다. 정부도 대책을 발표하지만 금세 잊히고 사회는 ‘설마’로 되돌아가 모두가 ‘쇼’를 하는 것 같다.
이대로면 또 다른 참사를 막지 못하고 뾰족한 대책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대형 사고 때마다 후진적인 사회 시스템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나 어처구니없는 희생자를 얼마나 더 치러야 바뀔 것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가슴이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옥주 2018-01-31 23:33:08
안전한 대한민국,공무원들에게만 맡기지말고 옴부즈맨들이 나서서 만들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