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예쁘지만 섬뜩한 로봇
[양형주 칼럼] 예쁘지만 섬뜩한 로봇
대전 도안교회 양형주 목사
  • 충남일보
  • 승인 2018.02.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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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와 ‘아름답다’는 비슷한 것 같지만 적용되는 범위가 다르다.
사전적인 정의로 ‘예쁘다’는 “눈으로 보기에 좋고 사랑스럽다”이다. 반면 아름답다는 단어의 뜻은 “모든 것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감탄을 느끼게 하거나 감동을 줄 만큼 훌륭하고 갸륵하다”이다.

언뜻 듣기에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 깊이 생각하면 아름답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모양뿐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여러 가지 특성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감동을 준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 특성들은 외적 특성들 뿐 아니라 내적 특성들까지 포함한다.

얼마 전 ‘핸슨 로보틱스’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가 국내의 한 컨퍼런스에 와서 한복을 입고 나타나 화제가 되었다.
소피아가 주목받은 이유는 말을 알아듣고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것도 있지만, 우리가 로봇을 대할 때 느끼는 부자연스러운 두려움의 장벽을 뛰어넘도록 시도된 첫 번째 로봇이라는 점이다.

이런 장벽을 ‘uncanny valley’라고 한다. 우리말로 ‘섬뜩한 두려움의 계곡’ 정도가 되는데, 이것은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아닌 로봇이 만들어내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말한다.
로봇이 입술을 열어 말을 하는데 무표정하게 계속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대화하면 기분이 좋겠는가? 아니다. 무표정한 얼굴은 오히려 말할수록 섬뜩하다.

마네킹을 보면 가끔씩 섬뜩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이 마네킹이 표정의 변화가 없을 뿐 아니라 그 뒤에 ‘생명 없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불편한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소피아는 말을 하면서 다양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다.

그래서 말할 때 보면 희노애락의 표정을 지으면서 감정적인 모습을 표현한다. 물론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조금 지나면 이런 표정을 짓는 모습이 더 부자연스럽고 섬뜩하다.

소피아는 여성을 모델로 한 로봇이다. 언뜻 볼 때 예뻐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상대하다보면 아름답다는 느낌은 갖지 못한다. 오히려 섬뜩한 느낌이 더해질 뿐이다.
왜 그럴까? 아름다움은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와 얼굴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뻐 보이는 것에 너무 목숨 걸지 말기를 바란다.

아무리 예뻐 보여도 1분만 이야기 하면 그 내면의 추하고 섬뜩한 모습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수해 보여도 이야기 하면 할수록 그 내면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내면의 아름다움이 빛날수록 어떤 외모이든지 간에 그 외모를 빛나게 만든다. 나는 예쁜 것이 좋은가, 아름다운 것이 좋은가? 나의 내면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만큼 충분히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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