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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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또 다른 옷, 성 처녀 아그네스의 긴 머리 (3)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14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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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그네스의 카타꼼베. 카타꼼베는 기독교 박해시대에 비밀지하장소로서 지하 가로망과 묘지가 위치한 곳으로 지하 벽면과 천장에 프레스코로 성화를 그려 넣기도 했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감독관은 매음굴로 달려와 울면서 아그네스에게 말했다.
“오, 어찌 여자가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느냐. 그대는 어째서 내 아들에게 마법을 썼단 말이냐?”
아그네스가 대답했다.
“그대의 아들은 자신의 의지를 단념시키려는 전능한 힘에 대항하려 했기 때문이오.
그와 함께 여기 들어온 사람들은 어째서 모두 죽지 않았나요? 그의 동료들은 광명의 불빛에서 기적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으며, 나에게 옷을 입히고 몸을 감싸준 나의 신을 찬양했기에 해를 입지 않은 것이오.
그러나 당신의 사악한 아들은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시끄럽게 마구 고함을 지르고 내 몸에 손을 대려고 하자 그대가 보고 있는 것처럼 마귀가 목을 졸라 죽인 것이오”
감독관이 다시 물었다.
“만일 그를 찬양하면 죽은 내 아들을 살릴 수 있겠는가?”
아그네스가 말했다.
“그대가 행한 것들이 주님에게는 모두 불손하고 모욕적인 것이었지만, 그래도 주님의 은총을 베풀도록 할 것이오. 그대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도드릴 것이오”
그녀가 기도를 올리자 천사가 다가와서 쓰러진 감독관의 아들을 일으켜 세우고 생명을 주었다. 다시 소생한 그는 큰 소리로 울고불고 하였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신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바다에서나 위대하며 자신들이 기도했던 우상이란 것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말했다.
이 때 이 곳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 술렁임이 일어나고 비명소리가 들리자 우상을 숭배하던 지도자가 명령했다.
“남자의 마음을 홀리고 기교로 이간질하는 이 마법의 여인을 끌고 가거라”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 본 감독관은 아들을 살려준 것에 대한 호의로 기꺼이 아그네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까지도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했고 슬픈 감정을 전달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이 곳에 있는 민중들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리에 선 채로 부관인 아스파시우를 시켜 불을 지르도록 했다.
아그네스가 서있는 곳에도 불을 질렀다. 불이 두 군데서 나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부를 모두 태우기 시작했다.
아그네스는 뜨거운 화염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죽기로 운명을 감수하기로 했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하나님에게 기도하였다. 처녀성을 잃지 않게 하고 또 불에 타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녀의 기도가 끝나자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고 불도 꺼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당황한 아스파시우스는 명령을 내려 그녀의 몸을 칼로 베도록 하였다. 그녀는 이렇게 순교하였다.
보라지네가 기록한 대로 아그네스는 로마 감독관 아들의 사랑과 베스타 여신 숭배를 거부하여 매음굴로 보내졌고, 또 주님의 은총으로 머리가 자라여 몸을 덮을 수 있었다.
긴 머리는 몸을 가릴 수 있는 옷이 되었고, 이 부분에서 우리는 문학가들에게 예술적인 소재를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아그네스는 왜 이런 시련을 겪었을까? 인간의 욕망이 없다면 순결의 가치도 그만큼 가벼워졌을 것이다.
욕망과 순결은 상반된 것에 대한 대비이다. 굳이 성처녀의 옷을 벗겨 매음굴로 보낸 것은 그 순결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순결은 욕망에 연결된 사슬이자 지향해야 할 가치이며, 욕망은 순결을 돋보이게 하는 그 역설이다. 따라서 아그네스의 순결은 불에 의해 정화되고 기도로 씻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성처녀에게 박해를 가한 감독관에 내려진 벌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들이 마귀에게 죽음을 당했고 또 주님의 은총으로 되살아나는 일을 겪었다.
그리고 그 감독관의 주인인 로마황제의 가족에게 그 벌이 내려지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딸이 염증과 악취 나는 문둥병에 걸리는 벌을 받는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공주는 나중에 아그네스의 무덤에 가서 기도하는 중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주예수를 믿으면 너의 병도 낳을 것이다’라는 아그네스의 환영을 보고 잠에서 깨어났고 문둥병이 씻은 듯이 없어졌다고 한다.
여기서의 문둥병은 육체적 질병이기도 하고, 부정에 대해서 가해진 정신적 저주(레위기 13:13-59)로도 이해될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황제로서는 처음으로 기독교를 인정했듯이 그의 딸 콘스탄스도 세례를 받고 정결을 얻게 되었으며, 아그네스가 묻혀있는 곳에 교회를 지었다.
보라지네는 아그네스가 콘스탄티누스 대제(306-337)시대인 309년에 순교하여 ‘까따꼼베’에 묻힌 것으로 기록했지만 로마카톨릭 교회사 자료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인 304년 1월 21일 순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03년에는 그녀의 유골을 측정한 결과 12세 혹은 13세에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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