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고음이라는 목적함수
[김창현 칼럼] 고음이라는 목적함수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8.04.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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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가요계에는 유령이 맴돌았다. 고음전쟁이라는 유령이. 도도하게 반주를 뚫고 나오는 고음이

야 말로 가수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카타르시스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알 수 없어’에서 보여준 김종서의 보컬, 랩과 고음을 안정적으로 쏟아내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97년 혜성처럼 나타나 고음계를 싹쓸이했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의 김경호, ‘천년의 사랑’으로 묵직한 고음을 보여준 박완규, X Japan의 명곡, ‘Tears’를 ‘잠시만 안녕’으로 리메이크해 히트했던 MC the Max 등, 90년대 고음계는 마치 삼국지를 넘어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참고로, 여기서 고음이란 가성이 아닌 진성, 혹은 반가성으로 내는 고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조관우의 ‘늪’과 같은 팔세토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는 이 논의에서 열외이다.

고음가수들은 댄스음악 일변도였던 가요계 한쪽 귀퉁이에서 수많은 모방자들을 만들어냈다. 지금도 동전노래방에서는 제 2의 김경호, 박완규가 되지 못했던 고음쟁이의 한풀이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언젠가부터 남성들은 고음을 잘 하는 것만으로 여심을 훔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노래방에서 ‘She’s gone’을 부르면, 본인은 스트레스가 풀리지만, 동행한 여성은 시계를 본다. 거칠게 말하자면, 고음의 시대가 저물었다. 고음만 되면 최고가 여겨질 수 있을 것이라는 고음쟁이들의 착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가수가 사로잡아야 할 것은 고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다.

90년대 후반 고음의 시대는 빠르게 저물었다. 그 대신 ‘연애하고 싶은 오빠’의 느낌을 내는 남자 아이돌이 그 자리를 채웠다. 고음을 포함하여, 춤과 노래가 되고, 얼굴과 몸매까지 되던, 거짓말 같았던 댄스그룹 ‘동방신기’는 3명이 탈퇴하여 반 쪽짜리 그룹이 되고 만다(‘동방신기’를 그냥 ‘춤추는 댄스가수’로 알고 계신다면 유튜브에서 ‘동방신기 Love in the ice’를 검색해 들어보시길 추천 드린다).

고음시대는 갔지만, 고음추종자들은 남아있다. 요즘에도 여성 가수의 곡을 원키로 부르는 일반인들이 나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일회성으로 소모될 뿐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인생은 속력이 아니라 방향이다. 어떤 목적함수를 향해 달리느냐가 그 사람을 만든다. 싸이는 ‘신나게 노는 것’을 목적으로 음악을 만들어 전 세계에 ‘강남스타일’이라는 음악사적 족적을 남겼고, 아이유는 ‘귀가 편한 음악’이라는 신기원을 만들어 한국의 독보적 아티스트가 되는데 성공했다.

아이유가 처음 빅히트를 쳤던 것은 ‘좋은 날’의 ‘3단 고음’이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아이유가 만약 그 뒤 5단 고음, 7단 고음을 발표했다면, 우리는 지금의 ‘아이유’라는 음악 자산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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