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기획] ④ “자주 오겠다더니 말 뿐”… 시설에 내몰리는 노인들
[가정의 달 기획] ④ “자주 오겠다더니 말 뿐”… 시설에 내몰리는 노인들
불황 속 요양원 난립… 갈 곳 없는 노인들 적은 비용으로 장기간 거주
시설수준·관리인원 천차만별… "일당정액제 수가체계 개선돼야" 지적
  • 김일환 기자
  • 승인 2018.05.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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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환자. 연합뉴스TV 캡처.
요양시설 노인 환자. 연합뉴스TV 캡처.

[충남일보 김일환 기자] 노인들이 가정에서 내몰리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노인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부양할 젊은 세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 국가들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725만7288명이며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었다.

UN(국제연합)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2008년 506만9273명으로 전체 인구의 10.2% 정도였으나 2014년 652만607명(12.7%), 지난해 699만5652명(13.5%)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2025년에는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노인인구 20%)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반면 지난해 출산율은 1.05명에 불과하며 기성세대의 노후준비 부족과 젊은 세대의 취업난 등으로 가정에서 노인들이 설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세태에서 노인병원, 노인요양원 등 노인요양시설에 노인들이 몰리면서 노인요양시설이 급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2017년 말 현재 요양병원은 전국에 1538곳, 입원 환자만 연간 33만여 명에 이른다. 2008년 690개였던 전국의 요양병원은 현재 1538개로 10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한 상황이다. 그런데 요양병원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각종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2008년 전국 1700곳이었던 노인요양원은 2017년 말 현재 5083곳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대전지역도 요양시설이 늘었다. 현재 요양병원은 총 53곳으로 동구 12곳, 중구 14곳, 서구 12곳, 유성구 10곳, 대덕구 5개 곳 등이며 총 정원은 9776명으로 동구 2181명, 중구 2304명, 서구 2135, 유성구 2068명, 대덕구 1088명이다.

2년 전인 2016년과 비교하면 대덕구를 제외한 모든 구에서 소폭 증가세를 보였다. 총 정원은 622명이 늘었다.

노인요양시설은 총 81개소로 동구 18곳, 중구 17곳, 서구 23곳, 유성구 12곳, 대덕구 11개 곳으로 입소현황은 총 정원 4821명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노인재가시설인 노인복지시설도 32개소로 756명이나 됐다.

문제는 이들 요양시설이 치료나 재활이 필요한 환자가 아니라 갈 곳 없는 노인이 적은 비용으로 장기간 거주하는 요양원이나 숙소의 개념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노인병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요양병원 입원 환자 중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환자가 33%나 됐고 의료 처치가 불필요한 이른바 ‘사회적 입원’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요양병원에 노인을 입원시킨 뒤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취재결과 부모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두고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자식들이 있는가 하면 몇 달이 지나도 얼굴 한번 보이지 않는 자식도 있었다.

지난 8일 어버이날에도 황금연휴에도 불구하고 썰렁한 모습을 보였다.

당료와 합병증으로 9개월째 입원 중인 임모(86) 할아버지는 “당료와 합병증으로 수차례 병원을 왔다 갔다 했다”며 “내가 자식들에게 ‘요양병원에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활동도 없이 요즘은 누워서 TV로 시간을 보낸다. 병원생활에 지친다”고 토로했다. 

요양병원 생활이 5년째라는 박모 할머니(89)도 “하루하루 누워서 무료하게 보낸다”며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눈물지었다. 처음에 자주 오겠다던 가족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단다.

버려진 노인들에게 요양시설은 ‘감옥’이었고 ‘강제 수용소’였다. 현실이 이렇기에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요양병원은 설립이나 운영 기준도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의사 1명만 있으면 개설할 수 있고 의사 1명당 환자 수는 보통 35∼60명,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도 4.5∼9명에 이른다. 결국,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우후죽순으로 생긴 요양원 중에는 함량 미달 시설을 갖춘 곳이 적지 않았으며 시설별로 이용자와 근무 인원 등에서 양극화가 심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불균형은 노인 학대나 부실 관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2014년 한 요양원에선 요양보호사가 70대 치매 환자를 때려 요양원이 6개월간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또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요양원과 요양병원 788곳을 점검한 결과 19곳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보관하거나 청소용 세제를 식품과 함께 보관하는 등 식품위생법을 어겨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의료계 등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에 일당정액제의 수가 체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는 환자를 등급별로 구분해 하루 일정액의 치료비(약 4만9000∼8만2000원) 중 60∼95%를 국민건강보험에서 지원한다. 병원에선 세부적인 진료 명세를 청구할 필요가 없다. 

한 요양병원 원장은 “이러한 수가 체계에서는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는 게 병원 입장에선 가장 수익을 많이 남기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 지난 2008년 7월부터 시행한 ‘노인 장기 요양 보험’도 노인요양시설 급증에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가 효도 상품’으로 노인 장기 요양 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요양원’은 특수를 누렸다.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도 요양시설 난립을 부추겼다. 

한편 건강보험관리공단 관계자는 “현재의 평가 기준은 요양원의 시설과 서비스를 1~5등급으로 나눠 평가한 뒤 1·2등급은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의 홈페이지에 공개한다”며 “병원의 치료 서비스와 안전시설의 현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도 “해마다 전국의 요양병원을 평가해 그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며 “2010년도 요양병원 적정성 평가를 해보니 병원 전반에 걸쳐 질적 수준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시설에서 개선 효과가 가장 컸으나 기관 간의 수준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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