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재판거래'법이 무너지면 윤리도 무너진다
[충남시론] '재판거래'법이 무너지면 윤리도 무너진다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8.06.1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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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양 대법원장은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적이 없고 흥정한 적도 없다”고 밝혔으나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115명의 대표판사들이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임시회를 열고 양승태 사법부 시절의 재판거래 의혹 처리를 위한 논의를 한 바 있다.
논의 결과 다수결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선언’이라는 제목으로 입장을 채택, 김명수 대법원장에 내놓았다.

이 논의에서는 관련 의혹을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젊은 법관들의 강경론과 사법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고참 법관들의 신중론이 맞섯기도 했다.
어떤 입장에 힘을 실을지 관심이 쏠린다. 김 대법원장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의결한 내용을 검토한 후 최종결정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과 제7회 지방선거 일정에 맞물려 이번 주내에 결정을 내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를 뒤흔들어 놓은 사태는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법원행정처 전직 간부들의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이 열면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상고법원 설립에 대한 청와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법원 측이 협력적 조치들을 취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포함된 문서가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사태가 심각하게 번지자 얼마 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재판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것으로 의심을 살 수 있는 문서가 발견됐고 전직 대법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 해명하는 상황 자체가 사법부의 신뢰 위기를 상징했다.

이런 일이 사실이라면 법원이 ‘국정운영을 뒷받침한다’는 발상 자체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재판에 대한 신뢰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특별조사단도 밝혔듯이 행정처나 대법원장이 실제로 재판에 관여했음을 입증할 자료는 없다는 점이다. 판결과 관련해 회유나 압박을 받았다는 판사들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마치 ‘재판 거래’가 실제로 이뤄졌던 것처럼 말한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의 ‘신 권력’과 ‘구 권력’ 간의 세력 갈등이라는 이야기마저 그래서 나오고 있다. 최종 발표에서 ‘블랙리스트’대신 엉뚱한 꼬투리를 잡아낸 것이 ‘재판거래’가 아닌가 싶다.

재판이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법부를 장악하면 그 상상이 실제 재판에서도 구현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 재판의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법이 무너지면 윤리도 무너진다.

이번 파장은 사법부에 위기이자 기회다.법원의 치부가 드러나 위기를 맞고 있지만 불신의 뿌리를 도려낼 수 있다면 신뢰받는 사법부로 거듭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우선 드러난 잘못부터 ‘법과 양심에 따라’ 처리돼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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