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판사의 꽃’ 대법관이 시골판사를 지망했다
[충남시론] ‘판사의 꽃’ 대법관이 시골판사를 지망했다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8.07.2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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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꽃’인 대법관의 임기 6년을 마친 뒤 시·군법원 판사를 지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법부의 대표적 적폐로 꼽히는 전관예우 관행의 정점에 있는 이들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다.

대법관 퇴임 직후 유명 로펌에 모셔지거나 개업을 하면 선임계에 도장 하나만 찍고도 3000만 원을 받는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황금 방석 자리인 전직 대법관이 돈과 명예가 보장된 법무법인이나 대기업을 마다하고 시골 판사를 자청하고 나서 화제다.

지난 1월 퇴임한 박보영 전 대법관이 고향인 전남 순천과 가까운 여수시법원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임용 여부는 법관인사위원회와 대법관회의를 거쳐 결정된다.

여수시 법원 판사는 소송가액 2000만 원 미만의 소액사건을 다루는 시·군의 ‘시골 판사’다. 지난해 원로법관제가 도입되면서 서울고법원장과 사법연수원장 등 고위 법관 5명이 이미 시·군 법원에 내려가 소액사건 재판을 맡고 있다.

하지만 대법관 출신으로는 박 대법관이 처음이다. 박 전 대법관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전관예우 관행을 깨는 은퇴 법관의 새로운 선례가 될 것이다.

대법관은 퇴임 후 2년간 개업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2년 후에는 대부분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가거나 법률사무소를 열어 막대한 수임료를 챙긴다. 대법관이 먼저 전관예우 관행을 깨는 선례를 보여서 퇴직 판사들의 모범이 되라는 요구에는 윤리적 정당성이 있다.

퇴직 후 화려한 꽃길을 포기하고 법조인으로서 고향에서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는 박 전 대법관의 갸륵한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대법원은 1995년부터 원로 변호사를 100곳에 달하는 전국 시·군법원의 전담판사로 임용해 왔다. 하지만 지역사회 봉사에 활용하려는 취지로 운영해온 이 제도가 지원자가 없어 2010년을 끝으로 맥이 끊긴 상태다.

법조계에 뿌리 깊은 전관예우 때문에 박 전 대법관의 행보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전관예우 철폐를 백번 외치는 것보다 현실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미국처럼 60세 이상의 경력 판사들에게 시간제 근무가 가능하도록 한 이른바 ‘시니어 판사제’를 차제에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박 전 대법관의 독특한 이력 역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1987년 판사가 돼 17년간 법관으로 일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2004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변호사로 개업했다. 주로 이혼 사건을 맡아 가사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도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불교 신자였던 남편이 출가를 원하면서 결혼 20년 만인 2007년 이혼한 뒤 세 자녀를 혼자 키웠다. 2012년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비서울대’(한양대) 출신에 ‘싱글맘’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 유명인이기도 하다.

황금만능주의를 경계하고 직업적 소명의식에 충실한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소중한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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