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16
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16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2)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18 1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 스페인의 주제페 데 리베라작품(1641년). 그녀의 긴 머리와 화사한 옷은 회개하는 모습과는 달리 우아하게 표현되어 있다.
1945년 이집트에서 한 농부가 들판에서 항아리 속에 든 파피루스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나그 함마디(Nag Ham madi) 문서다.
이 문서는 성경과는 달리 예수를 색다르게 해석하는 등 예수와 제자들에 관련된 사실들을 13권 52장으로 파피루스에 기록해 놓았다.
서기 140년경에 만들어진 이 문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스승으로 기록하는 등 그노시스주의자들에게는 중요한 문헌이다.
여성적인 하나님이 기성 교단에 의해 이단으로 거부된 데 비해 이 그노시스주의자들은 남성적인 신성과 여성적인 것을 결합하였고, 교회 생활에서 여성의 역할을 동등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제 2권 ‘빌립 복음서(The Gos pel of Phillip)’가 막달라에 관해 언급하였다.
또한 1896년 카를 라인하르트 박사가 카이로에서 수집한 문서(Berlin Gnostic Codex 8502)인 ‘마리아의 복음서’는 막달라 마리아에 대하여 그 어떤 자료보다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막달로 성은 나사렛과 베다니(예수가 나사로를 소생시킨 마을)에서 2마일 떨어진 곳이었고 마리아가 막달로 성을 소유하면서 그녀의 이름도 막달렌이 되었다.
남동생 나사로가 예루살렘 도시의 한 부분을 다스리고, 언니 마르다는 베다니를 관리하며 기사와 하인, 가난한 자들을 잘 관리했다. 그리고 마리아는 육체의 탐닉에 몰두했다. 막달라가 부유했을 때는 모든 것이 풍요롭고 즐거웠다.
그녀는 매우 아름답게 빛나고 부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가꾸는데 더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올바른 이름을 잃어버리고 죄악의 길로 가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기 그리고 여러 곳에서 설교를 하고 있을 때 그녀는 성령을 느끼게 되었고 문둥병에 걸린 시몬의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 집은 예수가 식사를 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감히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죄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 그 발 곁에 서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릿결로 씻고 값비싼 향유를 바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보통 목욕을 하고 햇볕에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향유를 발랐던 대로 행한 것이었다.
바리새의 시몬이 생각하기에 우리의 예수가 선지자라면 그는 죄 많은 여인이 자신을 만지는 것에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무례함을 꾸짖으며 그녀의 모든 죄를 용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많은 선물을 준 사람은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다. 예수께서는 많은 사랑의 징표를 보여줌으로써 그녀에게서 일곱 귀신을 잡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을 때는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버리고 12사도의 발아래에 모아 놓았다”
보라지네 이외에 함께 이집트 고대어로 기록된 파피루스 문서의 비전을 토대로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The Gos pel of Mary of Magdala)’를 쓴 프랑스의 렝니브르 로(Le an-Yves Leloup)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의 영적 후계자 중의 하나로 자리 매김을 해주었다.
그녀에 의하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자 겁에 질리고 절망에 빠져있던 남자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가 생전에 그녀에게만 알려준 비밀스런 지침이 있는지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스승으로 그려지는 부분이다.
보라지네가 쓴 막달라 마리아가 곧 성경 정경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동인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일을 수 있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녀가 창녀로 기록된 것은 없다.
성서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행실이 나쁘고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여자들로 묘사되었으나 그것을 후대인들이 나쁜 행실과 연관지어 그녀를 창녀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평가는 여성들이 교단을 위협한다고 느낄 때, 혹은 사회질서를 위협한다고 생각할 때 교부들이 그녀를 어떻게 평가하고 싶어 했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이해되지 않을까?
원래의 교회는 ‘남성의 교회도, 여성의 교회도 아닌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이것을 남성의 교회로 만든 성직자들의 정치적 행위가 있었다.
또 이런 가부장적 가치관 아래 이브의 딸인 여성들은 유혹자이며, 음탕하고, 육체적 욕망으로 뭉쳐 있는 존재로 만들었고, 그 상징으로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막달라 마리아라는 모델을 내세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은 아닐는지, 그리고 예술은 그런 그녀를 더 사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