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와 개 짖는 소리
가짜뉴스와 개 짖는 소리
  • 탄탄스님
  • 승인 2018.09.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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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스님(여진선원 주지, 용인대 객원교수)

대부분의 수행자들은 깊은 산간 오지로 떠나려고 한다. 세간에는 수행하는 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산중의 안거에 들어 깊이 천작하여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본분 납자에게는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있으니 곧 개 짖고 닭 우는 소리이다.

그 이유는 개가 짖고 닭이 우는 소리는 세속의 소리이고, 세속을 떠나 고요에 들고자 하는 수행자 본분 납자에게는 세속의 잡다함이며, 수행과 화두에 걸림이 그 개소리, 닭소리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되는대로 지껄이는 당치않은 말을 두고 세간에서는 ‘개소리’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개소리를 들을 때마다 ‘헛소리’로 여기고 한 귀로 흘려버리려고 한다 듣기에도 거북한 ‘개소리’인 것이다.

개소리는 시끄럽고 소란스러워 세상을 혼탁하게 만든다.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지껄이는 당치 않은 헛소리이어서 더욱 그렇다. 개소리는 원래의 어원은 말 그대로 ‘개의 소리’, 즉 개 짓는 소리였지만, 낱말 앞에 붙이면 비속어가 되는 부정의 접두사 ‘개’의 특성에 따라 속된 표현으로 변화하여 왔다.

주로 타인의 의견이 이치에 맞지 않을 때 이를 무시하는 욕설로 쓰이는데, 비슷한 낱말로는 ‘개뿔’이 있다. 흔히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때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도 이와 동일한 뜻이다. 어불성설이며 언어도단 등은 이와 유사한 고사성어이다.

우리 주변에는 매일 개 짖는 소리 이른바 개소리가 넘쳐난다. 여기저기서 개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모래밭의 개싸움 같이 이전투구의 정치판은 더욱 심하다. 그 이유인즉 대중들에게 자기의 주장을 강력하게 알리는 도구로 개소리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고 여기는 탓일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고도 한다. 프린스턴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해리 프랭크퍼트는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고 더 강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2005년 출간된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에서 “개소리의 본질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짜’라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개소리’와 ‘가짜뉴스’는 본질적으로 같다. 그는 개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진실의 편도 아니고 거짓의 편도 아니라면서 자기 목적에 맞도록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내고 부풀려 낼 뿐이라고 말한다. 한심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진실과는 거리가 먼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세상에 천지다. 정규방송, 개인방송, 인터넷방송, 종합편성, 전국지, 지방지, 정치면, 사회면, 연예기사, 부고, 종교지, 경제지에 나 홀로 기자까지 온통 진영의 논리에 저급한 색깔론까지 동원하여 앞뒤가 맞지 않는 허위 정보를 퍼트리고, 개인의 사생활을 부풀리고, 선동적인 책임을 묻고, 황당한 미래 예측까지 하며 인격을 재단하고 생명과도 같은 명예를 손상시키고 모욕감을 준다.

이 모든 것이 어떠한 정치적 우위를 선점하여 패거리나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형적인 정치꾼들의 ‘개소리 전략 전술’이고 신성한 종교계에도 침투하여 분란과 분규, 신성모독, 밥그릇 싸움을 늘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개소리를 해대는 정치꾼, 협잡꾼, 모사꾼들을 바로잡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는 개소리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과연 개처럼 짖어대며 개소리를 하는 자는 탱크이고 개소리에 대항하는 시민들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할까?

이런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시민들이 개소리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개소리는 무섭다’는 인식이다.

헛소리쯤으로 여기는 개 짖는 소리 ‘개소리’와 ‘가짜뉴스’가 시민 사회에 먹혀드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이는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공을 들여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는 데 있다. 가뜩이나 바쁘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 언제 그런 수고를 한단 말인가.

철학자 톰 챗필드는 ‘뉴필로소퍼(NewPhilosopher)’ 한국어판 창간호에 실린 자신의 글 <페이크 뉴스>에서 가짜뉴스가 먹혀드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이거 본 적 있어?’를 외치게 하는 자극적인 말(정보)은 서로 공유하는 데 매우 호의적인 반면, ‘잠깐! 잠시 멈추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신중한 자세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헛소리쯤으로 여기는 개가 짖는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데도 대중들은 개소리와 가짜뉴스를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이 나면 사람들은 법적인 책임까지 묻지만 개소리와 가짜뉴스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그러다 보니 개소리를 하는 정치꾼 모사가들은 안 먹히면 그뿐이니까 물불을 안 가리고 떠들어대는 것이다. 가짜뉴스도 마찬가지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개소리가 위험한 것은 효과가 생각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자기의 주장을 강력하게 인지시키는 도구로서 개소리만큼 적합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톰 챗필드는 “진실은 거짓말에는 대항할 수 있지만 개소리를 만나면 개소리의 심각성과 야만에 대해 경고하고 몽둥이가 약이어야 한다”라고 하는데 올바른 필봉을 말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월드 커뮤니케이션 데이’ 기념 메시지에서 “가짜뉴스(개소리)는 사탄의 속임수”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교황은 가짜뉴스에 속은 첫 번째 사례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를 들면서 개소리의 위험을 경고하였다.

교황은 가짜뉴스야말로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권력에 대한 갈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개 짖는 개소리는 인류의 시작부터 우리와 함께한 것 같다.

개 짖는 소리, 개소리, 가짜뉴스와 정반대되는 말을 불문(佛門)에서는 정어(正語)라고 한다. 정견(正見)에 맞는 바른말이다. 팔정도(八正道)의 하나이며 바른말, 거짓말, 남을 헐뜯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잡담 등을 삼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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