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짜장면과 슬라임
[김창현 칼럼] 짜장면과 슬라임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8.10.22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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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입맛’이라는 표현이 있다.

예를 들어 커피에 설탕을 넣어 달짝지근하게 마신다거나 얼큰한 국물보다는 스파게티와 피자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머쓱해하며 하는 말이다.

자신을 향해서 ‘저는 아이들 입맛’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겸손의 표현을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당신은 아이들 입맛을 가졌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은근한 비하의 의미가 숨어있다.

과연 아이들의 입맛은 따로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아이들은 단 음식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유로 달짝지근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연상태에서 쓴 맛은 독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맛이 아닌 성분으로 엄격하게 몸에 좋은 것을 걸러먹을 수 있는 문명의 도움이 없다면, 단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본능의 발로이다.

아이들이 채소를 싫어하는 이유 역시 채소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쓴맛들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채소를 먹이기 위해서 드레싱과 시럽을 뿌려서 맛을 낸다.

사실 이 원리는 우리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샐러드라는 이름으로 채소를 섭취하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로 ‘짜장면’을 꼽을 수 있다. 이유식으로부터 탈출하고 본격적으로 입맛이 생기기 전까지 약 2-5세 어린이 중 짜장면을 싫어하는 아이는 보기 힘들다.

필자는 요리실력이 일천해서, 아이를 봐야 할 때는 즉석 짜장면을 요리해주곤 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봐야 할 때는 점심 저녁을 먹인 적도 있다.

무려 두 끼를 주는데도 아이들은 행복하게 짜장면을 먹어주었다. 현재 필자는 짜장면을 “살 찌우는” 음식으로 분류하여 먹지 않는다. 아니, 먹지 못한다.

‘입맛’은 말 그대로 ‘좋아하는 식감’이라는 원래 뜻 이외에 ‘취향’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예전에 아이들은 “방귀대장 뿡뿡이”와 “뽀로로”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뽀로로는 쳐다보지도 않고, 터닝메카드라는 장난감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국의 쇼핑몰에 “아이앰스타”와 “프리파라” 열풍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아이들의 ‘입맛’도 진화한다.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쏙 빼놓은 것은 ‘슬라임’이다.
슬라임은 끈적끈적하면서도 손에 묻지 않고, 각종 장식을 하면 뽀드득 소리가 나는 신기한 물질이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슬라임 테마카페는 지난 주말에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1시간 동안이나 기다려야 겨우 입장할 수 있는 동네 명물이 된 것이다.

아이들의 욕구는 어른이 되지 못한 미숙한 욕망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독특한 욕망이다.

슬라임 카페에서 몇 시간이고 행복하게 노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주로 어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공간으로 가득한 도시의 무게중심 역시 다양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 쪽으로 조금씩은 이동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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