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나는 달린다.
[김창현 칼럼] 나는 달린다.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8.11.19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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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 필자는 어렸을 적부터 달리기를 잘 못했다. 초등학교 때 필자는 그렇게 키가 작은 편도 아니었는데 달리기 시합을 하면 거의 반에서 꼴찌를 했다. 엉뚱하게도 그 때는 “달리기를 못하는 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조상 탓이다.

최근 필자는 우연찮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꾸준히 뛰고 있다. 하루에 8km 가량을 뛰는데 최근에는 12km까지 뛰어보았다. 기록이야 보잘 것 없지만, 유전적으로 달리기를 못한다고 생각했던 필자가 12km를 쉬지 않고 한번에 뛰었다고 생각하니 혼자 뿌듯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몇 가지 좋은 변화들이 있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별 체중의 변화가 없더니 1달이 지난 다음부터는 제법 빠른 속도로 체중이 줄었다. 2018년 6월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현재까지 최소 13 킬로그램을 감량했다. 도톰해진 뱃살 덕분에 사놓고 10년동안 입지 못했던 슬림핏 셔츠를 입을 수 있어서 공짜로 새 옷을 산 느낌이 들었다.

작가 중 유명한 러너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그는 지구상 어디에서 살든, 최소한 하루에 2시간은 뛰고, 2시간은 글을 쓴다고 한다(물론 ‘최소한’이다). 하루키는 종종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제법 수필로 남겼다. 달리다가 포기하고 싶을 때는 다음 구절을 떠올린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 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날씨가 추워진다, 미세먼지 때문에 야외에서 달리면 좋지 않다, 러닝 머신에서 뛰면 관절에 좋지 않다, 바쁘다 등등. 정말 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정말 많다. 그러나 그 이유를 제치고, 하루 달리기를 하면, 또 그 다음날 달려야 할 이유가 생긴다.

꾸준히 달리기를 한 덕분에 체중감량 이상의 그 무엇을 얻은 것 같다. 의도치 않았던 장점으로, 전보다 더 글이 잘 써지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 한 자리에 앉아서 써내는 글의 양이 늘었다.

이 같은 효과는 단순히 근육량의 증가로 인해 생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인간의 뇌가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움직이기 위해서’ 진화했다는 학설이 힘을 얻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뇌를 활성화시키는데 가장 좋은 보약은 몸을 구석구석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건강을 위해서 시작한 달리기가 뇌에도 좋다 하니 오히려 뛰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마저 든다. 언젠가 이 칼럼을 보면서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다 창의적 생각을 할 수 있는 뇌를 가지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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