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연습
[양형주 칼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연습
  • 양형주 대전도안교회담임목사
  • 승인 2018.11.25 17: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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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의 어느 날, 시카고 부근에 인접한 거대한 미시간 호수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고요한 새벽의 침묵을 깨우고 있었다.

400여 명을 태운 여객선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와줘요, 누가 좀 도와줘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인근에 있는 대학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스펜서라는 청년이 이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벌떡 일어나 창밖을 살피던 그는 상황이 심각함을 알아차리고 얼른 옷을 갈아입고 호숫가로 달려갔다. 호수에서는 살려달라는 아우성 소리, 나 죽는다는 비명소리에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이때 스펜서는 용감하게 호수로 뛰어들었다. 힘을 다해 사람을 구조할 수 있는 대로 구조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무려 17명이나 되는 사람을 구조했고, 그러고 나서 힘이 너무 빠져 그만 탈진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스펜서는 이날 너무 무리해서 몸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그만 병상에 누워 무려 7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그만 32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한 신문사 기사가 그에게 찾아와 물었다. “스펜서, 그 날 당신이 구조해 준 17명의 사람들과 지금도 만나고 있나요?”

이 질문에 창백한 얼굴의 스펜서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했다. “제가 구해준 17명의 사람 중에 저에게 감사를 표시한 사람은 한 소녀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녀는 지금까지 7년 동안 매해 저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운 마음씨에 위로받으며 해마다 기쁨으로 기다리며 지냈습니다. 나머지 열여섯 사람에 대한 원망은 잊은 채로 말이죠.”

충격이지 않는가? 무려 17명의 목숨을 구해주었는데 그 감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머지 16명은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다. 살아난 후 바쁜 일상 속에 휩쓸리다 보니 살아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감사는 내게 주어진 것을 낯설게 여기는 것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이렇게 소중한 선물이 나처럼 부족한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감사가 시작한다. 내 주변의 환경이 익숙하다면 서서히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그러다 보면 감사보다는 불평이 나오기 쉽다.

내 주변을 돌아보자.
나는 이를 얼마나 감사하게 여기는가? 익숙한 것을 당연하게 보는가? 낯설게 보는가?
낯설게 보는 연습을 시작하라. 감사근육이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더 나아가 내 삶에 감사와 기쁨과 감격이 충만하게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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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이 2019-01-23 12:22:31
본 예화의 주인공인 스펜서는 위의 사건으로 큰 장애를 입어 평생 육체적 고통가운데사시다가 81세 되시는 해인 1917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Burbank지역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그분의 스토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상에 32세로 돌아가셨다는 잘못된 정보가 많이 돌아다녀 올립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해 보세요.
물론 감사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본글의 취지에는 절대적으로 동감입니다 ^^
http://wesclark.com/burbank/
http://wesclark.com/burbank/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