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지혜·행복·여유… '스마트폰'에 빼앗긴 것들
삶·지혜·행복·여유… '스마트폰'에 빼앗긴 것들
  • 탄탄스님
  • 승인 2019.02.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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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자장암 감원, 동국대 강사)
탄탄스님(자장암 감원, 동국대 강사)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행복의 척도는 삶의 여유일 것이다. 노년에 크루즈 세계여행을 꿈꾸고, 강원도 어느 경치 좋은 곳에 세컨드 하우스를 지어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이 소박한 직장인의 로망쯤 될 것이다. 행복하고 한가한 노년이든 여유로운 삶이든, 여가를 거론하지 않고는 논할 수 없을 것이며 여유있고 윤택한 삶이란 결국 생존에 가장 중요한 복지에 필수 항목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사회 초기보다는 첨단기계화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근로시간 축소와 소득 증가를 뒷받침으로 점점 더 시간적 여유가 생기게 된다. 직장의 업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이 즐기는 일을 찾아 그에 몰입하고 자신이 즐기는 일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기충전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욕구는 이제 더욱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현대사회의 대부분 직장인들은 각박한 일터에서 벗어나 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때가 있는데, 그렇다면 영화관도 없고 컴퓨터, 자동차도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어떠한 여가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조선 후기에 들어오며 급속하게 발달한 풍속화에서 그 시대의 양반들이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반들을 그렸다고 해서 ‘사인풍속화’라고 불리는 이 문화재 속에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생활상을 담은 회화를 의미하는 풍속화로 그중에서도 양반들의 여가 생활을 담은 작품이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그림의 발달은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며 이 시기에 이르러 조선사회에서는 신분주의가 해체되고, 자본주의와 상품 화폐 경제가 발전하였고, 그 결과 여가 문화가 더욱 상업화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정선의 ‘독서여가도’가 있는데, 정선의 그림에서는 한가롭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양반의 모습이 나타난다. 홀로 여가를 보내는 양반의 모습이 풍속화의 중심 주제로 등장한 초기 작품으로, ‘독서여가도’에서 양반 앞에는 화분이 놓여있고, 그 뒤로는 책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이는 당시 중국에서 들어온 문화의 영향으로, 조선의 양반들 사이에서 화분을 가꾸고 감상하거나, 서적을 소장하는 일이 여가 문화로서 널리 퍼졌기에 이와 같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장면이 연출 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주제의 풍속화는 기존에 그려지던 풍속화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당시 시대적 배경의 그림은 대부분 양반들의 여가 문화의 장면이 아니라 농민들의 노동 장면이나 휴식 장면을 주제로 하였지만, 양반 사대부들이 한가로이 여가를 즐기는 장면의 주제는 이 시기 풍속화에 일어난 변화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18세기 후기에 이르게 되면 기녀와 음악을 대동한 유흥적인 오락을 여가로서 추구하게 되는데, 이처럼 점차 사치스러워지는 여가 문화의 모습은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속 사인풍속화 장면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도 있다.

신윤복의 풍속화첩 속 등장하는 양반들은 기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음악을 연주하며, 뱃놀이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신윤복의 연작 풍속화 30여 점에 들어있는 이 화첩에는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한 남녀 간의 애정과 낭만, 양반 사회의 풍류 등을 다루고 있고 그의 풍속화들에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필선, 아름다운 색채로 인해 세련됨과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을 갸름한 얼굴과 눈꼬리가 올라가게 표현하여 다소 선정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화첩이 일본으로 유출된 것을 1930년에 전형필이 구입해 온 것으로, 미술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18세기 말 조선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생활사와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사치스러운 양반들의 여가 문화는 보다 시간이 지날 수 록 양반들뿐만 아니라 중인들이나 서민들에게까지 퍼져나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여가 문화와 여가시간이 현재 보다 더욱 공론화되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여가활동 조사에서 스마트폰의 부정적 위력이 충분히 입증되었다. 지난해 우리 국민의 전체 여가시간 중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보내는 시간이 평일 40.3%, 휴일 33.4%를 차지했다는 통계다. 이용시간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길었다.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가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죽했으면 ‘스마트폰 과부’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똑똑함을 자부하는 스마트폰에도 한계는 있다. 인간에게 지식(知識)은 주지만 지혜(智慧)는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知’는 화살 시(矢)와 입 구(口)로 이뤄져 있다. 입에서 나온 말이 화살처럼 빨리 전파되는 것이 지식이라는 얘기다. 지구 반대편의 정보까지 순식간에 접하는 요즘이라면 과거 화살의 속도에 견줄 바가 아니다. 그러나 지혜는 다르다. 지식에 나의 생각이 버무려진 뒤 충분한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손가락보다는 머리와 가슴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 삶에서 절실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다.

애플 이사와 구글 회장을 지낸 에릭 슈미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졸업식에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컴퓨터를 꺼라. 여러분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끄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해야 한다.” 스마트 혁명을 주도한 인물이 온라인 접속을 끊고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라고 역설한 것이다. ‘똑똑한’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 ‘멍청한’ 인간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거장의 준엄한 경고를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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