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가우디, 그의 삶으로 보여준 이웃사랑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가우디, 그의 삶으로 보여준 이웃사랑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2.17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가족 성당 La Sagrada Família.

안토니 가우디. 어렸을 때 난 그 분이 모피코트의 장인인 줄 알았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일간지 지면 하나를 다 덮은 광고 영향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 이후 스페인은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이후 미디어 덕에 스페인 하면 수도인 마드리드 보다도 바르셀로나를, 바르셀로나 하면 곧 가우디를 떠올리게 되었다. (마드리드에 사는 입장에선 살짝 자존심이 상한다.)

본명은 Antonio Gaudí i Cornet 으로 좀 더 길다. 1852년 카탈루냐의 레우스 태생인 그는 천재인지 미치광이인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라는 말로 칭찬과 비꼼이 섞인 말을 들으며 졸업했다. 글쎄, 건축 비전문가 입장에선 그는 둘 다 인듯 하다. 미치지 않고서야 당시 시대 흐름을 과감히 벗어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현해 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고, 천재라는 건, 예외없이 그의 건축물을 보는 이들마다 외치는 단어라 바로 검증이 된다. 심지어 그의 건축물 중 무려 일곱 작품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되었다. 실화? 응, 실화!

건축물마다 각각의 개성이 넘치는데,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사랑을 받는건 지금도 진행 중인 성가족 성당 La Sagrada Família 이다.

2000년에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와서 보고 깜짝 놀랬다. 이게. 정말. 성당. 맞아? 매번 딱딱하고 엄숙해서 입장도 하기 전에 주눅들게 만들었던 고압적인 틀에서 벗어나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십수년이 지나 이젠 한 달에도 몇 번씩 들리는 성가족 성당은 시간마다 달리 빛나는 채색 유리창에서 그 온기를 더 깊이 느끼게 한다. 단순히 성당이라는 종교적 건물 자체만이 아닌 가우디의 헌신적인 삶의 이야기가 덧입혀졌기에 한층 다르게 다가오는게 아닐까.

가우디는 부유한 후원자 구엘을 두어 화려하고도 멋진 건물들을 남겼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가난했다. 아니, 그냥 가난이라기 보단 스스로 선택한 청빈이란 단어가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대체 얼마나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았기에 전차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옮겨졌어도 아무도 그가 신의 처소를 짓는 위인이라는 걸 몰랐을까. 그리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질 수 있는데도 자신은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게 낫다라며 빈민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가우디는 이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신의 말씀을 실천한 신의 대리자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의 삶에서 보여지는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조금이라도 나를 남들보다 돋보이게 하려 브랜드에 신경 쓰는 속물적인 자아를 부끄럽게 만든다.

가우디가 미완성 유작으로 남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붉은 스테인드 글라스는 지금도 여전히 방문객에게 한껏 따사로움을 전해준다. 그것은 그저 멋있고 화려하고 찬란하기만 한 색이 아니다. 채색창을 투과한 한줄기 빛이 다양한 빛깔의 향연으로 우리에게 감동과 영감을 안겨준다. 그러하듯, 내 삶에서 투영된 사랑이 나만 바라보기 보다는 한번이라도 더 내 이웃을 따스히 품어주길 가우디는 채색창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바가 아니었을까.

김덕현 steve
김덕현 steve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