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몬세랏, 신의 톱질이 만든 안식처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몬세랏, 신의 톱질이 만든 안식처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2.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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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serrat,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루냐어로 '톱질한 산'이란 뜻의 몬세랏은 바르셀로나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가면 만나볼 수 있다(톱질을 스페인어로는 시에라 라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의 느긋한 성품 만큼이나 그들이 생각하는 톱질도 뭔가 나사 하나는 빠져 있는가 보다.

기암괴석의 산등성이가 뾰족해서 하늘을 찌를듯 솟아있기 보다는 둥글둥글하게 깎여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 곳을 찾아오는 그 누구라도 품어줄 듯 한 모습이다. 신은 아담에게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했는데, 서방 끝 스페인에서는 자연을 닮아가라 한거였을까. 그 푸근함에 나는 오늘도 마음의 쉴 곳을 찾게 된다.

한반도의 산속 절경이 펼쳐지는 곳곳에 암자나 사찰이 있어 세속에 찌든 심신을 닦고 가듯, 이곳엔 가는 곳마다 성당과 수도원을 마주하여 잠시 기도와 묵상을 올리게 된다. 하, 그래도 그렇지 1200 미터도 넘는 이곳에 돌만으로 이루어진 수도원이라니, 11세기서부터 이 수도원을 지켜왔다는 저들의 자긍심에 이방인인 나는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따름이다. 석재보다는 그래도 덜 무거웠을 나무로 지은 사찰이 웬지 더 인간미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베네딕트 수도원 윗층에 있는 라 모레네타 La Moreneta, 검은 성모상은 오늘도 오랜시간 줄지어 기도하러 오는 순례객들을 말없이 맞이한다. 나도 시간이 허락할 때면 대기줄에 들어가 묵상 가운데 구슬을 만져본다. 오늘은 무엇을 빌어볼까. 하지만 기도의 효험이라는 건 꼭 그 결과를 봐야 하는게 아니다. 그 간절함이 나같은 자의 마음을 움직여 부러 찾아오게 한 것부터가 놀라운 효험이 아닐런지.

관광객에겐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담길 사진 한 컷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절박한 이의 심중은 침묵의 검은 성모상 앞에 무릎마저 꿇게 한다. 자력으로 해결이 안되기에 절대자에게 찾아온 그의 마음이 기도라는 행위 속에 안정을 찾는다. 그 안정감이 그를 다시 험난한 세상에 뛰어 들어가 노력 속에 마침내 소원하는 바 를 이루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리라.

관광객으로 웅성거리는 수도원을 나와 성 미가엘의 십자가 Creu de Sant Miquel 전망대로 향한다. 전망대까지 가는 구부러진 산책길은 인생의 굴곡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숨 고르기를 마치고 마침내 높은 전망대에 도착해서 수도원과 몬세랏 산을 내려다보니 사진에서만 보던 눈 시리도록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잃는다.

지친 마음이 쉼을 얻는 순간이다. 답답한 체증이 시원해지니 내면에서 따뜻함이 차오른다. 산자락과 구름들이 사람의 얼굴로 변한다. 누군가 하고 보니 이 멋진 곳에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다. 그러다 더 많은 얼굴이 나타난다. 아... 저들은 긴 시간 나를 변함없이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이들이었다. 자격 없는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과 친구에 대한 고마움이 미안함과 함께 끝없이 밀려온다. 카탈루냐인들의 몬세랏은 그렇게 이방인인 내게도 안식처로 다가왔다.

김덕현 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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