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늘봄, 구엘 공원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늘봄, 구엘 공원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2.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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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관광객 중 바르셀로나 안 와 본 이가 없고, 바르셀로나에 오면 구엘 공원을 안 들린 사람은 (거의) 없다. Park Güell, 파크 구엘이라니? 눈썰미가 있다면 이름부터가 스페인스럽지 않다는 걸알아차렸을 것이다(참고로 스페인어로 공원은 Parque, 카탈루냐어로는 Parc 다).

맞다. 이 공원은 시작부터가 전통 스페인식 중정(Patio)의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바로 영국식 개방형 정원을 본떠 도입하려 했다. 그래서 이름부터 영어를 썼고, 공원의 느낌도 영국식 풍경을 느끼게끔 하려고 했다. 구엘 공원의 주인 구엘은 가우디에게 평생 화수분이 되어 준 절대적인 후원가였다. 스페인의 메디치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영국을 방문하고 와서 영국식 전원주택을 꿈꿨다.

나라별 정원 양식을 잠시 살펴보자.

프랑스는 기하학적 문양을 바탕으로한 정형식 정원이 유행이었다. 또한 절대왕권을 수립한 나라였기에 단순히 화초로 꾸미는 수준이 아니라 인공운하를 따로 둘 만큼 스케일이 남달랐다.

독일, 오스트리아는 추운 날씨 탓에 정원 관리가 어려웠고, 그마저도 유행을 선도한 프랑스의 영향으로 역시 정형식양식이 대세였다. 영국은 산업혁명 영향으로 도시로 밀려드는 시민을 위한 쉼터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왕실의 정원이 개방되면서 정원이 일반인을 위한 공공장소로 변모, 사유지에서 공원으로 park 단어의 개념도 변했다. 복잡한 기하학 무늬보단 편안히 쉴 수 있는 풍경식 정원이 필요했다.

한편, 스페인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아랍의 영향을 오랜 세월 받은 나라였다. 이슬람의 탄생 환경은 애당초 화초나 수목과는 거리가 멀었다. 종교건물 조차 자연환경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눈만 뜨면 밀려드는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해 항상 건물벽을 높게 둘러야만 했다. 사원에 들어오면 모래먼지를 뒤집어 쓴 온몸을 씻어내야 했다. 그 습성을 자연환경이 중동과 사뭇 다른 스페인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그래서 스페인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닫힌 중정(中庭)을 두고 누가 볼세라 안에서 그들만의 휴식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구엘은 원래는 공원이 아니라 60채의 단독 주택 단지를 만들어 분양하려 했다. 게다가 교회와 시장과 같은 공공시설까지 두려고 했다. 하지만 구엘의 예산이 부족해 공사가 중단되고 만다. 중단된 공사는 그대로 아들에게 유산으로, 다시 그 유산은 시에 기증이 되었다. 직물산업의 큰 손인 그가 '조물주 위의 건축주'까지 되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구엘의 이루지 못한 계획은 더 많은 사람에게 환상과 꿈을 심어주는 장소가 되었다.

깨진 타일 조각(트렌카디스 trencadis)을 모자이크로 공원 곳곳을 장식해 어디서든 빛의 찬란한 반사로 눈을 부시게 한다. 구불구불한 벤치는 그 누구와도 볕을 쬐며 편한 휴식을 누리게 한다.

헨젤과 그레텔의 집을 모티브로 만든 경비실과 관리실은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 밑의 분수대를 비롯한 세 단의 장식물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모델 포즈를 취하게 만든다. 세계의 배꼽인 옴파로스를 심어놓아 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게 하고, 그 아래에 그 옴파로스가 있는 델포이의 신화 동물, 거대한 뱀 피톤을 귀여운 도마뱀으로 변형해 이곳을 지켜 달라는 염원을 전하며, 바로 아래에 카탈루냐의 문장을 넣어 독립기상을 내비치고 있다.

김덕현 Steve

제아무리 흐린 날이라도 여기만 오면 내 마음은 들뜬다. 그래서 1년 내내 기분좋은 봄날 따스함을 마주할 수 있는 곳, 구엘 공원. 어쩌면 가우디는 처음부터 상위 1% 계층이 아닌 대중에게 개방될 거라는 걸 예지해 두고 세계에서 가장 환상적인 공원이란 큰그림을 구상했던게 아니었을까.

곧 봄이 온다. 구엘공원으로 가자.

가서 가우디의 타일에서 한껏 햇살을 머금고 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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