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3·1운동 100주년 국민 대통합을 이룩하자
[충남시론] 3·1운동 100주년 국민 대통합을 이룩하자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9.02.27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어’에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는 가르침이 나온다.

또 “아름드리나무도 털끝만한 데서 자랐고 높은 집도 한 줌의 흙에서 부터 시작하며 천리 길도 첫걸음부터”(合抱之木生於毫末 九層之臺起於累土 千里行始於足下)라고 했다.

이 말은 3·1운동을 두고 한 가르침인듯 하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3·1운동은 지역, 종교, 계층, 남녀 차이를 모두 뛰어넘어 오직 ‘민족자주’라는 직접적인 목표와 ‘신문명구축’이라는 원대한 이상을 향해 우리 한민족이 하나로 뭉쳐 세계 인류에게 고한 대헌장과도 같은 가치가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그 출발점이 3·1독립선언서 1762자다. 이 가운데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라는 글이  떠오른다.

필자층이면 이렇게 시작하는 3·1독립선언서 1762자 중 일부를 학교 때 외우는 경우가 있었다. 중·고교 시절 독립선언서를 달달 외운 경험도 있다. 그러나 3·1독립선언서의 토대가 된 2·8독립선언서 원문을 아는 이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2·8독립선언서는 1919년 2월 8일 재일 유학생들로 구성된 ‘조선청년독립단’ 이름으로 발표됐지만 실제 문안 작성은 춘원 이광수가 전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수는 당시 ‘무정’이란 장편소설을 발표한 유명한 작가다.

식민정책의 야만성을 폭로하고 민족자결에 의한 자주독립을 주장하는 방식이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명문이라는 평가다. 육당 최남선이 3·1독립선언서를 기초할 때 이 문건을 참고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 혁명사에서 인구의 10% 이상이 참여한 사례는 3·1운동이 처음이다. 그 영향으로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그때 반포된 대한민국임시정부헌장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3·1운동은 민족독립운동 이상의 시민혁명, 민족혁명, 민주혁명 성격을 지녔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해석이다. 올해는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기점이 됐으면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는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발자취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100년의 출발선에서 통합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면 분열은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태극기는 3·1운동의 상징이다. 태극기와 한데 어우러져 국민 대통합의 분수령을 만들길 바란다.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민족 발전의 동력을 발휘하여 대통합해야 될 것이다.

올해 3·1절은 국민 축제가 될 수 있도록 고민하길 바란다. 100년 만에 한 번 오는 분열을 극복하고 대통합의 용광로가 되어 새로운 100년을 향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3·1운동 100주년을 꿈꾸길 기대한다. 이제 불필요한 논란으로 인해 독립운동의 의미가 퇴색하는 일은 방지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