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쯤 실패한 대통령
절반쯤 실패한 대통령
  • 탄탄스님
  • 승인 2019.03.0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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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자장암 감원, 동국대 강사)
탄탄스님(자장암 감원, 동국대 강사)

삼국지(이문열 평역)에서 형주를 치기 위해 남하한 조조가 쫓겨가는 유비 일행을 보고 이러한 독백을 한다.

“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위해 제도를 고치고 세금을 덜었으며 무언가를 베풀고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고마워할지언정 나를 좋아하고 따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럼으로써 그들 마음을 사려(買)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오랜 경험으로 결국 그러한 사고 팔기에서 보다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사려고 애쓰는 쪽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형세가 이롭지 못해 급히 후퇴해야 할 상황이지만 수많은 백성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고 후퇴하는 유비를 따르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한탄한 것이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비는 한 번도 그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백성들에게 베풀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제도를 고쳐 백성들을 편하게 할 만한 안목도, 세금을 줄여 그들의 짐을 덜어줄 만한 재력도 없었다. 그가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껏 원래보다 더 나쁘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 정도다. 그러면서도 백성들은 그를 좋아하고 추앙한다. 그는 민심을 사는 게 아니라 얻고 있다.”

문재인의 핵심 지지층이 이탈하는 것을 보며 삼국지의 ‘얻는 자와 사는 자’ 챕터가 캡쳐된다. ‘촛불혁명’을 주도한 민주노조의 적극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란 거대한 담론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을 연일 쏟아내었다. 그러나 성적표는 대단히 부진하고 처참했다. 취임 직후 최고 80%대까지 치솟았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2년 남짓에 40%대로 곤두박질치듯 추락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정책은 주로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눠주겠다는 의욕이 출발점이었지만 정책 설계는 부실하고 결과는 정부가 계획했던 것과는 사뭇 거리가 멀어져 자영업자는 폐업 위기에 몰렸고, 경비원은 해고당하고, 20대 청년 알바생은 일자리를 잃었다. 정책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됐던 이들의 삶은 더욱 피폐하여지고 고단해지는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은 오히려 서민을 궁지로 몰아넣은 꼴이 된 것이다.

과속이 문제였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너무도 급진적이었으며, 자영업자와 영세 소상공인들의 비용상승과 직결되는데도 사전에 부작용을 검토도 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의욕만 넘쳐흘렀지 대처 방법은 어리버리하고 미숙하기만 했다.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비명을 지르자 그제서야 카드수수료 인하 같은 뒷북 대응에 나섰고, 이는 다시 카드 노조 반발을 불렀다. 이쪽을 땜질하면 저쪽이 터지는 식이다. 근로시간 단축도 탄력근로제 단위시간 보완책 없이 시작해 삐걱거리고 있으니, 준비 없이 서둘러 국민의 마음을 사려고 한 탓이 아니겠는가? 시필귀정이라고 해야 옳다.

20대 청년들의 민심 이반이 두드러진 것도 정부가 예상치 못한 일이며, 군 복무기간 18개월로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은 20대 청년을 위한 정책이었지만 이들은 젠더 갈등, 양심적 병역 거부, 취업률 등에 대한 이 정부의 대응에 고개를 돌렸다. 소통을 강조한 정부였다고 하지만 지지층 마음을 얻지 못하고 민심이 돌아선 것은 지표로 드러난 참사 수준의 고용, 소득불평등의 악화가 그 원인이었다.

일자리 예산을 54조 원이나 혈세를 퍼부었지만 돌아온 것은 일자리 쇼크였으며, 정책의 역효과에 대해 따져보지 않는 무모함과 지나친 자기 확신, 국민·기업 등 현장 목소리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 등이 원인이었다.

포퓰리즘과 감성팔이의 정치는 이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민 상당수의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안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은 정부로선 뼈아픈 대목일 것이다. 국민이 삶 속에서 확실히 체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는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망가지고 있는 경제를 살리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연초부터 기업을 방문하고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기로 하는 등 경제 행보에 나서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기업과 소통하는 행보를 더욱 늘리고 장차관 등 고위직의 균형감 있는 종교 간, 지역 간 안배와 가톨릭 위주로 진행된 현 상대적 불균형 구조도 반드시 개편해야 마땅하다. 각 종교 간의 형평성과 세대 간의 갈등, 지역 간 불균형 등 국론분열을 막고 정적들 손보기에도 다소 유연함이 있어야 하는데, 연일 돌격 앞으로이다. 국민과 접점을 넓히는 것이 최우선 과제여야 함에도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피부에 와 닿는 정치를 해야 마땅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필요하다면 정책 방향도 마땅히 신속히 바꾸어야 한다.

대학의 구조 조정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금년 하반기로 어정쩡하게 밀어 놓았다. 특정 종교를 배려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며 공정을 부르짖는 꼴은 더욱 가관이 아닐 수 없고, 어느 것이 선결과제인 줄도 모르고 날은 저물어가고 갈 길은 이제 멀어지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국민 마음을 사려고자 하면 실패할 것이 명백하다. 국민 살림살이가 편안해지면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민심 아니겠는가. 다음 총선에서 민심 이반이 없으리라는 확신도 없다. 그나마 평범한 시민의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거의 참사 수준으로 수시로 대형 사고를 쳐주는 자질 떨어지는 야당 의원이라도 있어 주니 이 얼마나 불행 중 다행 아니겠는가? 아직도 야당은 분열되어 있고 저급한 수준의 이념 공세나 펴는 한참 질 떨어지는 정치인이라도 굳건하게 견디고 있어 주니 현 정권이 그나마 자리보전 중인 것이다.

정권 안보도 좋고, 공정한 세상도 원하며, 적폐청산도 당면한 과제이지만 국민의 표심이 천심인 세상을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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