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지친 그대에게 플라멩코를!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지친 그대에게 플라멩코를!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3.10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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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는 우리나라 판소리처럼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된 스페인 고유의 예술공연이다. 하지만 딱 하나로만 잘라 말하기엔 그 안에 담긴 가짓수가 너무도 많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 단 두 사람만이 나와 소리꾼 위주로 이야기를 엮어내는 반면, 플라멩코는 가창과 연주에 춤꾼까지 가세하여 판을 좀 더 크게 벌리고, 세 파트가 개별적으로 놀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듯 하나로 융합해 관중을 쥐락펴락 한다.

깐떼(cante 노래)는 우리의 춘향가가 언제 스페인에 소개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구슬프다. 소울와 타령의 경계에서 단조 선율의 음울한 기운은 며칠 전 별 일도 아닌 일에 짜증내고 열 올리던게 떠올라 그에게 미안한 마음 마저 갖게 한다.

구슬픈 깐떼에 마음이 미어져 갈 때, 또까오르(tocaor 플라멩코 기타리스트)가 현란한 기타 선율로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의 눈은 본인의 기타 연주에 심취한 듯 관객 한번 보는 일 없이 가수와 무용수만 눈빛 교환을 할 뿐이다.

이어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등장하는 호리호리한 바일라오르(bailaor 플라멩코 남자무용수)와 기다랗게 끌고 나오는 화려한 주름치마의 바일라오라(bailaora)는 서로 몸이 닿을 듯 말 듯 품 안에 감춰둔 꽃송이를 주고 받으며 저들의 말을 대신한다.

그저 요란스레 발만 구르고 마는 게 아니라 부채를 접고 펼치고 돌리는 통에 나도 홀린 듯 눈이 따라간다. 어렸을 적 짝짝이라 부르며 정말 짝짝 거리는 소리만 냈던 캐스터네츠는 듣고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재빠른 리듬으로 따라라락 훑어내는 통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심지어 지팡이가 나와 사정없이 바닥을 두들기니 관객의 눈과 귀와 심장은 이미 저들에게 압도당하고 만다.

그들의 시선은 어떠한가. 수시로 희노애락을 표정에서 전환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감정을 보여준다. 무용수들은 관객들이 본인에게 완벽히 매료된 것이라는 걸 경험상 이미 알고 있는 듯 긴장감을 전하면서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일까. 구슬프면서도 특유의 도도함이 묻어나는 눈빛이 절제된 손놀림과 함께 관객의 어깨에 던져진다. 일체의 다른 생각 할 틈을 주지 않는 저들 앞에 웬지 나는 무릎이라도 꿇고 봐야할 거 같다.

발에 12기통 엔진이라도 단 듯 폭발적으로 박차는 그들의 발구름을 보다보니 문득 왜 저들은 땅으로 파고 들어갈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 어느 춤이든 대개는 하늘을 향하고, 슬픔조차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하는데 왜 안달루시아에서 펼쳐지는 집시의 플라멩코는 유독 오만상 찌푸려 가며 애꿎은 바닥을 파는가.

사람대접 못 받고 떠돌며 멸시받는 저들도 실은 주위의 이웃처럼 정착해서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소망이 춤을 통해 발현된 게 아닐까. 인정받지 못한 설움이 춤을 통해 응축되고 그 정점에서 터져 나오는 두엔데(duende, 황홀한 순간 맛보는 절정의 상태)에 관객은 어느새 물아일체가 되어 삶에 대한 투지를 재점화하고 만다. 이어나오는 박수 갈채와 탄성, ¡Olé!

그렇다. 플라멩코는 다른 누가 아닌 삶의 무게에 지친 나를 위한 공연이었다. 답답하고 억울한 일에 눌렸을 때 주저하지 말고 풀어내라고, 속으로 삭이지만 말고 소통하라고, 이 또한 지나갈 일이니 괜찮다고, 땀에 흠뻑 젖은 머리를 흔들며 온몸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플라멩코의 열정을 받은 덕에 긴 여정에 풀린 신발끈을 다시 질끈 묶고 힘차게 출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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