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시간이 멈춘 톨레도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시간이 멈춘 톨레도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4.0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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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주말이면 서울을 벗어나 근교에서 바람을 쐬고 싶어진다. 스페인의 서울인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만 내려가면 전혀 다른 얼굴을 지닌 또다른 스페인을 마주하게 된다. 천년의 고도 톨레도가 바로 그곳이다.

전세계를 하나로 포맷했던 로마도 이 곳을 다녀갔다. 그들은 1000km도 넘게 흐르는 따호 강이 이 지역의 삼면을 에워싸 천연의 요새로 입지를 굳힌 것을 보고 '똘레뚬 Toletvm'이라 명명했다.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그 곳은 서고트 족의 영토가 되어 톨레도란 왕국으로 자리매김한다. 강력한 제왕을 갖추지 못한 서고트는 711년 북아프리카에서 넘어 온 무어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내분이 난 이슬람은 1085년에 레온과 카스티야 왕국의 용맹왕 알폰소 6세 (Alfonso VI, El Bravo)에게 톨레도를 다시 넘기고 만다. 이후 무적함대의 펠리페 2세가 1561년 마드리드로 천도하기 전까지 톨레도는 천년간 수도역할을 감당했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져 왔기에 무기가 발달했다. 지금도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을 테마로 톨레도 구시가지내 매장들마다 다양한 크기의 멋진 장식용 칼을 전시한 걸 볼 수 있다. 톨레도의 멋스러움은 아랍의 영향 하에 발달했던 금은상감 장식품인 다마스키나도 Damasquinado 에서도 보인다.

다마스키나도?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분들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이름으로 다메섹 이란 지명에서 나왔다. 예수 믿는 유대인을 핍박하던 사울이 예수를 만나고서 회심하고 바울로 개명한 곳으로, 현재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가 바로 그곳이다. 그 지역의 주요산업이 검 제작과 금속세공 등의 수공업이었다. 고급 기념품 매장에는 확대경을 낀 백인 장인들이 각종 연장으로 그릇의 홈을 파고 금실을 촘촘히 넣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기분이다.

마드리드가 스페인의 행정적 수도라면 톨레도는 종교상 수도이다. 카톨릭의 나라답게 스페인에는 각 도시마다 주교가 관할하는 대성당이 있는데, 이곳엔 대주교 (또는 수석대주교)를 모신 수석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규모로 치면 세계에서 세번째로 크다는 세비야의 대성당에 비해 작고, 역사적으로도 성 야고보의 유해를 모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보다 280여년이나 늦게 지어졌다. (늦는다 해도 1227년에 시작해 1493년에 완공되었으니 500년의 시간은 훌쩍 뛰어넘는다.) 건물 자체로서는 다른 대성당에 밀리지만 수석 대주교님이 계시기에 카톨릭의 중요 회의는 이곳에서 열린다.

1986년에 톨레도의 구시가지는 통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가 되었다.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마다 이야기가 피어오르고, 먼지가 켜켜이 앉은 적벽돌의 잔해가 성벽이 되어 도시를 감싸고 있는 톨레도가 세계유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듯 싶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속도와 총알배송으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우리로선 이곳은 눈에 밟히는 곳마다 사극 촬영현장을 답사하는 기분이 든다. 불편함이 일상이 된 나머지 편리함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라니. 이런 역설은 이곳에 와야지만 설명이 가능하다.

밖으로 나와 보니 톨레도 숲은 거대한 중세의 박물관이다. 흘러야 할 도시의 역사는 타호 강에 둘러 싸여 시간을 가두어 버렸다. 멈춰진 시계 태엽에 사람들은 속도감을 잃어버렸다. 발전이 사라진 그들의 일상은 외지인이 보기에 여전히 불편을 달고 불행하게 사는 것 같다. 하지만 빨라진 만큼 더 많아진 일로 더 바빠지고만 현대인의 모순은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몇 번의 터치만으로 일을 처리하니, 상세한 말과 글은 지루해졌다. 그래서 짧은 단어, 그 마저도 초성으로, 아니 이모티콘으로 대신하는 일상이다. 모임 현장에서조차 마주하는 상대방이 아닌 사각 스크린 안에 눈을 가두고, 잠시도 손가락을 멈추지 못하는 나를 보니, 정작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시간이 멈춰진 저들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건 미션 임파서블이겠지만, 적어도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잊지 말아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는 명확해졌다. 그건 바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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