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영감과 노력의 어딘가, 피카소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영감과 노력의 어딘가, 피카소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5.1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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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개작- 전체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노력을 그 어느 때보다 강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에디슨은 1%의 영감을 강조했었다. 즉, 1%의 영감이 없다면 99%의 노력은 소용없다는 뜻으로 얘기했으나 잘못 전달되고 말았다. 실은 영감이든 노력이든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주가 있는 자, 곧 천재를 두고 “만들어진다” 라고 표현한 것부터가 오류였다는 생각도 든다.

큐비즘의 아버지, 파블로 피카소. 그는 천재였을까 아님 노력의 대가였을까. 스페인 국내의 명성을 넘어 월드 클래스로 칭송받는 그는 의심할 바 없는 천재의 대명사이다. 나는 그런 피카소가 싫었다. 원래 열등감에 쩔어 사는 사람은 누가 잘난 꼴을 못 보는 법이다. 사촌이 땅을 안 샀어도 배는 늘 아팠을 것이다.

피카소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목록을 만들 정도로 많은데, 일단 그의 그림에선 뭐가 아름답거나 멋진건 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냥 좀 평범하게 보이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 온통 조각난 얼굴과 몸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지고 만다.

다음으로 그림에 해석이 들어갈 틈이 없다. 종교화에 익숙해 상징과 의미를 유추하던 습성이 피카소로 넘어오자 도상이라곤 1도 적용되지 않는 난해함에 그림을 마주하기가 싫어진다.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한데, 범부의 노력을 훌쩍 넘어 천재의 반열에 오른 파블로가 그냥 싫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싫어서 싫은, 이런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나의 인식을 단박에 깨주고 부끄럽게 만든 곳이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 (Museu Picasso) 이었다. 이 곳은 피카소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대가로서의 작품으로 전시된 파리 피카소 미술관 (Musée Picasso) 과는 달리 소년기, 청년기, 특히 청색시대와 장밋빛 시대 (Periodos Azul y Rosa) 의 습작과 작품 위주로 걸려 있다. 생소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천재의 유년기 시절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피카소는 인위적이고 이상적인 미학 보다도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담았다. 만들어진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하나의 시점만으로 나타내던 원근법을 무너뜨렸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대상이 왜 하나의 시각만으로 보여져야 하는가. 이는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니 화가 앞에 놓인 오브제는 수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완전히 다른 피조물로 탄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는 첫번째 오해, 아니 무지를 풀었다. 피카소에게 미술이란 사물에 대한 재해석의 과정이었기에 아름다움은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없었다.

개성이 드러나는 이상, 기존의 관습에 얽매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세계대전을 두번이나 겪는 그 혼란 속에 무엇이 절대적인 가치와 약속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해석 자체가 불필요한 작업이었다. 해석의 시도 자체도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를 봐 달라는 그의 올곧은 의지와 일관된 주장이 작품마다 큰 침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화가 자신의 생각과 시대의 상황이 읽혀지니 더는 작품을 애써 분석하려는 난해함이 아니라, 그의 탁월한 영감에 무릎을 치게 되었다. 두번째 곡해의 실타리가 풀렸다.

엘그레코 화풍의 남자
엘그레코 화풍의 남자

피카소가 처음부터 세상에 천재로 짜잔하고 등장한게 아니었다. 엘 그레코 화풍의 그림부터 그가 가장 존경했던 벨라스케스의 모작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전까지 대가들의 작품들을 수없이 따라 캔버스에 담았다. 이는 곳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 쉬이 볼 수 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이건 미친 짓이야’ 라고 읊조리는 천재 피카소의 노력의 결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자그마치 5개월에 걸쳐 46개로 개작한 작품이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개작1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개작2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개작3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개작4

그 누가 단 하나의 주제를 두고 이렇게까지 파헤치고 헤집고 뒤집어 엎을 수 있을까. 그에게는 이미 잘 그렸다, 못 그렸다의 일차원적 평판이 의미가 없었다. 노력 속에 영감이 탄생했고, 아울러 그 영감을 실현하고 구체화 하기 위해 노력이 서로 씨줄 날줄로 피카소의 무수한 붓질 중에 엮였다. 그는 그냥 천재가 아니라, 노력이 낳은 인재였던 것이다.

피카소는 죽을 때까지 60여 년간 3만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하루에 최소한 한 작품 이상을 남겨야지만 가능한 결과다. 천재화가 피카소? 그것만으로는 그를 단정할 수 없다. 영감만으로도 그를 설명할 수 없다. 피카소와 그의 작품에 대한 나의 몽매가 깨지자, 비로소 그의 메시지가 선명히 다가왔다.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해보라.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길을 우직히 가보라. 당신의 삶에서 당신은 이미 피카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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