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창민의 티벳 톺아보기] 저 너머의 사람 사는 풍경- 사원에서 사는 사람들
[주창민의 티벳 톺아보기] 저 너머의 사람 사는 풍경- 사원에서 사는 사람들
  • 주창민 대전 빛그린스튜디오 대표
  • 승인 2019.06.1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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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주창민 All rights reserved 암도티벳 – 티벳불교 황모파승려들.

조선 후기의 북학파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를 보면 청나라 건륭황제의 고희연 축하사절단으로 북경을 방문하였을 때 티벳불교의 대표인물인 빤첸 라마를 만났을 때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 머리에 말갈기 같은 털이 달린 가죽신 모양의 관을 썼고 금으로 짠 선의는 민 소매에 왼쪽 어깨를 거쳐 온몸을 감쌌으며 오른편 옷깃 겨드랑이 밑으로 팔뚝을 드러냈는데 굵기는 허벅지만 하고 코는 쓸개를 달아맨 것 같고 눈썹은 두어 치나 되고 흰 눈동자가 겹쳐 있어 몹시 음침하고 어두워 보였다. - 열하일기중에 태학유관록에 나온 내용입니다.

유교사상의 중심인 선비들은 불교와 승려를 천대하였던 것을 당연히 여겼는데 청 황제의 강권에 의해 티벳불교의 대표인물이며 황제의 스승인 빤첸 라마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은 당대의 큰 사건으로 여길 만 합니다. 티벳은 그만큼 오랑캐중의 오랑캐로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에서도 해가 지는 서쪽의 노을에서 말을 타고 나타나 노략질을 하는 오랑캐가 토번이라고 들려 줄만큼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였습니다. 정확한 이야기의 근거는 파악이 되지 않지만 몽고(원나라)와 만주족(청나라) 모두 티벳불교를 받아들여 왕성한 교류를 하였고 그 영향이 고려와 조선에게도 미쳤을 꺼라 추측해 봅니다.

2011 주창민 All rights reserved 암도티벳 사원에서 예불을 드리는 모습

저 또한 고원의 문명연구를 위해 지역을 다니면서 만난 티벳인들 중에 많은 승려친구들이 있습니다. 열하일기에서 묘사 한 것처럼 의복의 형식은 지금과 같고 생김새 또한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사원의 둘레길을 거닐다 보면 낯설게 보이는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어눌한 중국어로 말을 건넵니다. 서로 어눌한 중국어로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자신들이 사는 사원아래에 있는 집으로 초대를 합니다. 그러다가 만난 젊은 승려

덩치는 씨름선수처럼 다부지고 눈매는 깊고 목소리는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낮고 걸걸합니다. 그가 승려가 된 계기는 어릴 때 초원의 시골마을 흙집에서 살 때 지붕이 무너져 흙과 나무기둥에 깔렸는데 머리에 작은 흉터만 남기고 기적처럼 살아나 10살 때에 집에서 나와 승려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사는 마을근처의 사원에 먼저 승려가 된 친척에게 맡겨져서 20여년을 지내왔다고 합니다. 티벳불교에서는 가족들의 보살핌을 어느 정도 받으며 승려생활을 합니다. 사원아래에 승려들이 사는 집들은 승려들끼리 서로 매매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경제력에 따라 집안의 장식과 가구, 불교용품들의 수준이 다릅니다. 그러면서 제자처럼 어린 승려들을 받아 가르치며 함께 살기도 합니다.

2013 주창민 All rights reserved 암도티벳 티벳불교 승려와 그의 아버지.

내가 아는 이 승려는 30대 초반으로 사원 안에 자신이 속해 있는 곳에서 중간 정도의 지위가 있으며 사원에서 불경을 잘 낭송을 한다하여 어린 승려들의 지도를 맡아 관리를 합니다. 사원에서 바쁘게 생활하다가 여름에 잠깐 휴가를 받으면 사원 밖의 다른 지역인 상하이, 항저우, 광저우 등등의 대도시에 있는 한족친구들을 위해 기도를 해 주며 융숭한 접대를 받으며 다닙니다. 가난한 외국인인 저에게도 찾아 온다고 하였지만 그들의 법도를 따를 자신이 없어서 정중히 사양을 하였었습니다. 이들은 이름이 적힌 종이를 받아 사원에서 예불을 드릴 때마다 이름을 거론하면서 부처에게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승려친구는 20대 초반으로 역시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만나 사원아래 그의 스승과 함께 생활을 하는 집에 가서 우유차를 대접받으며 사원 밖의 세상이야기를 나눕니다. 중국보다 더 동쪽에 있는 한국의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면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음성메세지로 친구들과 메세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신호도 잘 터지지 않은 변두리 초원에 있는 사원에서 승려가 핸드폰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니 나름 신선한 충격 이였습니다. 급속도로 바꿔가는 사원 밖의 세상과 함께 이들도 변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런 도구들은 좋은 점도 있겠지만 이 친구에게서는 티벳불교를 수양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약 2년이 지나 사원에서 나와 세속인이 되어 도시를 유랑하며 농민공처럼 지낸다고 합니다.

2014 주창민 All rights reserved 암도티벳 마니통을 돌리는 티벳불교 승려.

티벳으로 인도후기불교가 들어와 이를 먼저 수용한 사람들은 대부분 왕족과 귀족들이였습니다. 지역을 관할하는 힘이 티벳불교의 종파에서 나왔으며 몽고제국과 청나라가 티벳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승려들이 스승의 역할을 하여 다니면서 많은 재물과 문물들을 전해오는 통로가 되어 군사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정치 경제 종교적인 부분에서 막대한 힘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환생한 활불 이외에 그들조차도 가난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승려가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티벳인들은 자본과 기회가 있다면 고등교육을 시키고 유학을 가며 장사를 합니다. 머지않은 때에 초원 위의 금빛사원들은 아마도 관광객들로만 가득한 시끄러운 유원지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집니다.

주창민 대전 빛그린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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